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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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그러니까 2010년에 우연히 청소년들이 쓴 수필, 소설을 읽고 그들을 위한 시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도 이야기했듯이 처음 청소년 전용(?) 시집이 나왔을 때 '이거다' 싶었다. 물론 내가 그런 시를 쓰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시집이 있다는 것이 신선했으며 나아가 그에 대해 전혀 관심 갖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어린이시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청소년시는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썼던 어느 글에서 그러한 마음을 이야기했는데 이 작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 후로 청소년을 위한 시집이나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해석한 시집이 가끔 눈에 띈다. 내가 그닥 시를 좋아하지 않고 어려워하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학창시절에 지나치게 분해하는 방식으로 시를 접해서가 아닐까 싶다. 온전히 내가 느끼는 시가 아니라 누군가가 분해한 방식을 그대로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그들이 느끼는 방식까지 강요받았다. 시조차 문학이 아닌 지식으로 접근했던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순수하게 문학으로 접근하는 시를 읽자고 다짐하지만 그게 또 쉽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청소년들을 위한 시집이 차츰 나오기 시작하니 나중에는 나보다 시를 많이 접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위안을 삼으며 이번에는 푸른책들에서 나온 청소년 시집을 보았다. 헌데 나도 모르게 창비에서 나온 시집과 견주어 읽게 된다. 그러면서 출판사마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음을 느낀다. 내가 느낀 바로 이 출판사는 일반적으로 서정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났던 청소년 시집은 청소년들의 어두운 면과 감추고 싶은 면을 과감히 드러낸 반면 이 시집은 그들의 힘든 상황에 천착하고 있어서 동정적인 시선을 갖게 만든다. 대신 시대를 꼬집는 날카로운 쾌감은 느끼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청소년들의 문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충분히 만족하며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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