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두의 우연한 현실 사계절 1318 문고 54
이현 지음 / 사계절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선입견은 편리할 때도 있지만 때론 심각한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한때 모임에서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우리 작가의 책을 대거로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주로 만났던 작가가 최나미, 이현, 유은실, 박효미였다. 각각의 작가가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이야 달랐겠지만 내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봐서인지 그들이 같은 범주로 각인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책은 분위기가 비슷한 생각마저 든다. 특히 유은실 작가의 눙치는 방식(한켠에서는 동화 기법이 아닌 소설적 기법을 띤다고 하지만 여하튼 난 좋다.)을 좋아하는 내게 이현의 작품도 비슷하게 여겨진다. 읽어보면 차이가 나지만 확실히 그 이전에 활동하던 작가들과는 뭔지 모를 차이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이현은 <<짜장면 불어요>>와 <<우리들의 스캔들>>을 읽으며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작가였다.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딘지 4차원일 것 같고 성격이 고분고분할 것 같지 않은 작가다. 그러기에 언젠가는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역시 작가소개부터 독특하다. 음악과 여행(인지 바다인지는 모르겠으나)을 좋아하는지 그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는 웬 가수들이 잔뜩 나온다. 이 책을 읽는 요즘 아이들이라면 머릿속으로 언급되는 가수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겠지만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이 이 사람처럼 여겨지는 나로서는 당췌 모르겠다. 그저 작가가 노래를 참 좋아하는구와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시간의 어느 순간에 다른 일이 벌어졌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에 관한 이야기인 표제작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을 해보았을 법한 이야기다. 만약 그 당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아니 내가 선택하기 이전에 상황이 달랐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영두도 우연히 어느 순간에 갈라진 자신을 만난다. 그러나 둘의 인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든 상황이 안 좋기만 한 문제아 영두와 평범한 영두의 모습은 읽는 이조차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 밖에 외계인을 만났는데 지구에서의 삶이 희망이 보이지 않아 그들을 따라갔다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 가족이라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 등 각각의 이야기는 읽고 나서도 마음 편해지지 않는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빨간 신호등>은 그 또래의 아이, 특히 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읽게 된다. 종원이의 사고방식이 비단 책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줄곧 종원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시온이 마음도 종원이와 같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남자는 '사랑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강간이었던 것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결코 마음 따스해지는 부류의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현실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이점이 바로 작가의 특징이지 싶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점. 그리고 현실 참여적인 눈과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드러내기에 당장은 아프지만 그래야 상처가 빨리 아무는 법이다. 청소년들에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만 들려줄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들도 현실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기에 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 당장 마음이 편치 못해도 조금은 안심이 된다. 현재의 청소년들 편에 있는 듯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