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베이비시터 사계절 1318 문고 65
마리 오드 뮈라이 지음, 김영미 옮김 / 사계절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주인공이 착한 사람이라면 독자는 안심하고 책을 읽는다. 그러나 툭 하면 거짓말이나 하고 엄마와도 사이가 그닥 좋지 않은 사춘기 소년이 주인공이라면 안심할 수 없다. 우연히 시작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면 언제쯤 진실이 드러날까 조마조마해 하며 읽는 게 보통이다. 거짓말이 들통나야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어른들은 믿으니까. 그러나 에밀리앵을 바라보는 작가는 그렇지 않다. 처음엔 그 점이 불편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자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다. 삶이란 잘못했다고 꼭 벌을 받는 것도 아니며 좋은 일을 했다고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 것처럼 때로는 작은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도 있지만 별 일 아닌 것처럼 지나가는 일도 의외로 많으니까.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에밀리앵은 평범한 학생이다. 물론 엄마와 에밀리앵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지도 않다. 가끔 티격태격하지만 마지막엔 언제나 웃는다. 다만 엄마는 항상 일 때문에 바쁘고 약간은 신경질적이기에 엄마에게 애틋한 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래서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만난 안토니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자 책까지 사다 읽으면서 아이의 발달과정에 대해 연구한다. 에밀리앵은 안토니 엄마가 자신의 엄마처럼 자식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봐주며 심지어 자신의 형제라고 여기는 것만 보아도 사랑이 고프긴 했나 보다. 그러나 그들은 에밀리앵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떠나자 역시 가족은 자신과 엄마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에밀리앵이 비록 처음에는 컴퓨터를 사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했지만 그로 인해 정이 무엇인지 배웠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비록 툭 하면 거짓말하고 그 거짓말 때문에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지만 그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알고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에밀리앵이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들켜서 외적으로 압박을 받지는 않는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에밀리앵의 문제로 놔둔다. 대신 아망딘느를 만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아망딘느의 행동을 알게 된 후 아망딘느가 곤경에 처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멋진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에밀리앵의 말처럼 운명적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망딘느를 보며 도둑질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에밀리앵이 물건을 훔치고 만다. 그것도 관계가 소원해진 마리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엄마가 에밀리앵을 데리러 가서 물건값을 지불하고 데리고 오는 것까지다. 앞으로 에밀리앵은 다시는 물건을 훔치지 않을 것이며 마리와도 사이가 좋아질 것을 암시하면서. 그러나 에밀리앵이 반성한다든지, 엄마에게 훈계를 듣는다든지 하는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에밀리앵 엄마는 쿨하고 재치있게 넘긴다. 에밀리앵이 잡혀 있는 가게에 가서도 당당하게 돈을 내고 데려오는 모습은, 우리 작가의 글에서는 만나기 힘든 장면이다. 만약 그랬다면 뻔뻔한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에밀리앵 엄마에겐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후에 아들에게 하는 말과 연결시켜 보면 뻔뻔한 게 아니라 아들을 믿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그동안 에밀리앵의 엄마가 아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너무 자신의 삶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엄마로서 자격미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 마음은 여느 엄마와 똑같다는 걸 알 수 있다. 커다란 사건이 있는 듯 없는 듯 잔잔하고 때로는 밋밋하게 펼쳐지지만 사건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다. 자꾸 읽고 되새길수록 각 인물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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