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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꽃 - 김환영 동시집
김환영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큰 아이는 왼손잡이다. 엄밀히 말하면 양손잡이다. 우리집 가족 구성원의 75%가 왼손잡이니 그다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 때는 그림을 그릴 때다. 왼손으로 스케치를 하다가 오른손으로 지우는데 특히 글이 있는 그림의 경우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왼손으로는 그림을 그린다. 다른 사람들은 한 손으로 이것저것 하느라 거쳐야 할 단계가 많지만 딸은 그렇지 않아서 남들이 부러워한단다. 이 시집을 펼치고 그 안에 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양손잡이인 딸이 생각났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니 얼마나 멋진가. 남들이 딸을 부러워하듯이 나도 이 시인이 부럽다. 특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럽다. 자신이 본 것을 그려놓는다면 얼마나 멋진 추억이 될까. 그림책 작가 중에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은 봤지만 시를 쓰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동시집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시집은 그런 동시집과 느낌이 다르다. 아름다운 말만 골라서 예쁘게 표현하려고 하는 시들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되 시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진솔하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동시집을 읽을 때는 치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시가 무엇인지 절로 느껴졌다. 아, 시는 이런 것이구나, 시는 이렇게 느껴지는 것이구나 싶었다. 시를 느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작약이 피기 전에 개미가 줄지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깜장꽃이 피었다고 표현한 것이나 나비가 팔락이는 모습을 보고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 표현한 재치. 누구나 보는 것들을 시인은 이처럼 다르게 표현하다니 그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까 궁금하다. 대도시에서는 보고 느낄 수 없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은 것으로 보아 머리에서 나온 동시가 아니라 생활에서 느낀 동시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더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생활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최근에 읽었던 동시집 중 가장 마음에 콕 박히는 동시들이었다.
이제 겨울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2010년 12월에 걸맞는 시 한 편을 소개해야겠다. 처음에 제목을 보지 않고(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대개 제목을 먼저 보는데 이 시만은 제목을 안 봤다.) 시를 읽었는데 순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몰랐다가 그 의미를 알고 웃었더랬다. 제목이 무엇인지 맞혀보시길. 참고로 이 제목의 전문(全文)이다.
밤새 자동차를 먹어 치운
북극곰들이
두 뒤만 푹푹 내어놓고
주차장마다 드르렁 드르렁
코나팔을 불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