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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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이 바뀌고 나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형상으로 보자면 그 전과 바뀐 것이 없는데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것일텐데 바로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물론 다른쪽 사람들은 이조차 주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느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뻔히 보이는데도 일부의 이익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때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심정은 화가 나다 못해 허탈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보면 분명 발전해왔지만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몇 년 사이에 상당히 퇴보했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원래대로 되돌려놓겠다고 벼르지만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하는지 자명하게 드러났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내 주변에 있는 대개의 사람들이 현재 잘못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누가 이 정권을 지지하는 것일까. 하긴 이걸 보더라도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은 비주류임이 확실하다. 주류였다면 분명 현재를 '좋은 시절'이라고 느낄 테니까. 

  언제던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를 만나서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원래는 강연이었으나 어찌어찌해서 사장실에서 간담회를 하게 되었다. 그때 오연호 대표가 조국 교수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잘생겼지, 머리 좋지(서울대, 그것도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그곳에서 교수를 하고 있으니), 글 잘 쓰지, 게다가 진보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그리 흔한 것이 아니잖은가. 그러면서 조국 교수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서 어떨 것 같냐고 슬쩍 묻기도 했었다. 조국 교수가 첫머리에 밝혔듯이 대담 도중 오 대표가 조 교수에게 그런 권유를 많이 했단다. 그야말로 '상품성'(이것은 내가 생각해낸 말이 아니라 조국 교수가 직접 한 말이다.)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자기 분야에서 일 잘하며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이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망가지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치를 잘한다 해도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추기는 절대 불가능할 뿐더러 옳은 길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지 않았던가. 개인적으로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면서도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국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만 봐도 그렇다. 나도 조국 교수를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금의 그 모습과 그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물론 정치를 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은 아주 힘들다는 걸 알기에 차라리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길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내가 궁금했던 것을 이토록 명쾌하게 풀어줄 수 있을까 싶어 마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현 정권은 무조건 잘못하고 전 정권은 모두 잘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사실 현재의 문제점을 파고들어가다 보면 보수'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어느 사회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보수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 기득권이자 수구세력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듯이 보도 일종의 수구세력일 뿐이다. 정치는 진보이지만 생활은 보수인, 그야말로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예전에 우리는 이랬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솔직히 나도 한때 시리즈가 '누구'에게만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 80년대의 학생운동만을 생각하다가 특정한 집행부 없이 중구난방이었던 촛불집회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만약 지금의 진보 세력이 정신만 차렸다면 한쪽에서 이토록 말도 안되는 일을 밀고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간이 모든 면에서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일 수는 없다. 나도 대개는 보적이지만 때로는 많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있다. 현재의 상태가 더 편해서, 혹은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서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간혹 갈등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핀잔듣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고 올바른 것인가는 알고 있으며 거기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조국 교수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무조건 진보적이라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합리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좋다. 조국 교수는 민노당의 어떤 행동은 당연한 것인 반면 어떤 행동은 옳지 못했다고 명확히 이야기하고, 386의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어느 한 편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다른 편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옳은 방향으로 나가야 할 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어쩌다 보니 조국 교수에 대한 예찬론이 되어 버렸는데 어쨌든 진보측에서 유능하고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집권이 목표가 아니라 그들의 가치를 실현할 방법을 찾는 게 목표였으면 한다. 그러면 보수 정권이라도 그들이 할 일이 있을 것 아닌가. 물론 이왕이면 집권하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으니 좋겠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진정한 목표는 가려질 수도 있을 것 같아 하는 얘기다. 오연호 대표기자와 조국 교수는 어차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니 이야기하면서도 죽이 잘 맞았을 것이다. 대담을 나누는 동안 그들의 화기애해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이 책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읽어도 좋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갖도 있는 사람이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궁금할 때 읽어도 좋겠다고 오연호 대표는 말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보수쪽에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텐데 나는 내 기준에서 지나치게 선을 그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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