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이와 버들이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12
박영만 지음, 원유순 엮음, 허구 그림,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는 원래 '말'로 전달되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이 많던데 나는 그러지 못했기에 내게 옛이야기는 책으로 '읽는' 것이었다. 지금도 읽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런데 읽고 나서 말로 다시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면 잘 안된다. 옛이야기 본연의 역할을 못 살리고 있는 셈이다. 헌데 나 같은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서서히 말로 하는 옛이야기는 줄어들고 책으로 된 옛이야기만 남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나마 책으로라도 남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옛이야기는 말로 전해지기 때문에 다양한 판본이 있다. 그 중에서도 박영만이 수집한 옛이야기를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도 박영만 선생님이 수집한 이야기를 근거로 하고 있다.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수집한 것만 보아도 그가 옛이야기에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콩쥐팥쥐도 생각나고 바리데기도 연상된다. 예쁜이는 착하고 어여쁘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자 새엄마를 맞았는데 하필이면 못됐다. 옛이야기에서 새엄마는 대개 나쁘고 심술궂다.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겠다. 여하튼 새엄마가 어느 정도로 못됐냐면, 집안 일이며 들일을 몽땅 시키는 것도 모자라 한겨울에 나물을 뜯어오라고 시킨다. 예쁜이는 또 그걸 묵묵히 감내한다. 하지만 이건 바로 버들이를 만나기 위한 수순이다. 

예쁜이가 손을 호호 불며 눈덮인 산을 넘어가는 그림은 보기에도 처량하다. 두 면에 예쁜이가 가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어느 정도 먼 길인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다음에 버들이를 만나 신이 나서 뛰어가는 그림은 보기에도 경쾌하다. 그 먼 길을 짧게 축약시키고 예쁜이의 모습도 다양학게 표현하고 게다가 표정까지 밝게 그려서 그림만 봐도 예쁜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대신 새엄마는 아주 무섭게 그려졌다. 시퍼렇고 커다란 얼굴에 덩치는 또 어찌나 큰지. 그런데 그림의 전반적인 느낌이 신선하진 않다. 전형적인 우리 이야기라는 느낌은 들지만 뭔가 새로운 맛이 없다. 이게 참으로 어려운 주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독자로서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책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을까. 

버들이가 선물해 준 병이 예쁜이 아버지에게 쓰일 줄 알았는데 전혀 의외였다.하긴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아예 나오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나도 모르게 바리데기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결국 버들이가 준 병을 뼈만 남은 버들이에게 뿌려줘서 살이 되고 피가 되고 생명을 다시 얻는다. 이쯤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버들이가 죽어서 안타까워 하고 있던 차였으니까. 이처럼 옛이야기는 선과 악이 대립하다가 끝내 선이 이긴다. 그래서 안심하고 책을 덮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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