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숲의 거인
위기철 지음, 이희재 그림 / 사계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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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내용이 내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중에 '아하!'하고 무릎을 칠 때의 그 상쾌함이란. 그렇다면 이 책은? 솔직히 제목만 보고도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대충 짐작이 갔다. 어느 방향의 이야기겠구나 싶었다. 다만 각 등장인물들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정도가 새로웠다고나 할까. 

제목을 보니 문득 <나의 계곡>이 생각난다.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라 그림과 내용은 대충 기억이 나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한참 뒤진 뒤에 알아냈다.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흥을 기대했나 보다. 그런데 애초부터 둘은 차이가 났다. 이 책은 글이 꽤 있는 동화책 형태고 <나의 계곡>은 그림책이니 둘을 수평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쨌든 처음 책을 만났을 때의 느낌만은 비슷했다. 

화자인 어린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밝히고 시작한다.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만났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얘기다. 어린이 책이니 설마 둘의 연애사에 초점을 두 않았을 테고,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하며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살짝 궁금하다.  

엄마는 코끼리 통조림을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이것은 나중에 엄마가 아빠를 만나 숲으로 돌아가기 전까지의 엄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결혼해서 아이를 숲에서 기를 수 없다는 이유로 문명 생활을 하지만 거인이었던 아빠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고 숲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거인이었던 아빠가 엄마를 해적으로부터 보호해주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엄마가 아빠를 보호해준다. 그걸 남편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아빠는 숲을 대표하므로 자연에 대한 사랑이라고 확대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듯 곳곳에서 문명 생활이 편리하지만 얼마나 사람을 메마르게 하고 마음을 지치게 하는지 이야기한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엄마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냉장고가 없고 세탁기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고, 옷에 흙이 묻어도 살 수 있고 벌레가 많아도 살 수 있다고 외치며 숲으로 뛰어가는 엄마의 모습에서 작가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니, 너무 의도가 뻔해서 한편으론 김 빠지기도 한다. 독자가 느낄 여유를 빼앗긴 듯해서. 

그나저나 솔직히 나도 숲에서 살고 싶다가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살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서 그냥 포기해버리고 만다. 옷에 흙이 묻거나 벌레가 많은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전자제품이 없으면 살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이미 문명에 너무 길들여졌나 보다. 그래도 딱딱하고 숨 막히는 아파트 숲은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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