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는 창비아동문고 259
이현 지음, 김홍모 그림 / 창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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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동화를 읽다 보면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괜찮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실망하는 책들도 있다. 이 책은? 물론 전자의 경우다. <짜장면 불어요>와 <우리들의 스캔들>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평론가가 아닌 일개 독자이기에 어느 부분에서,무엇 때문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각각의 이야기 주인공에 몰입하며 읽다 보면 어느새 전체적인 이야기가 하나로 수렴된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억지로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문득 느끼게 될 때의 그 느낌이란. 

제목답게 각 이야기의 소제목은 날씨와 연결된다. 그러면서 날씨와 각 이야기의 분위기가 무척 잘 어울린다. 날씨를 매개로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돌아가며 비추지만 그렇다고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즉 서로의 이야기가 연결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변명으로 만들지 않는다. 간혹, 한 사건에 대해 각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자칫하면 시각의 차이를 인정하기 보다 서로에 대한 변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헌데 이 동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비록 가진 게 없지만 사람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동희네 가족과 남들이 보기에는 비뚤어진 문제아처럼 보여도 속마음은 여느 아이들과 다름 없는 종호네 이야기, 새침떼기에다가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사는 아이들을 얕잡아 보지만 결국 그 동네의 사람사는 맛의 매력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영은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감초처럼 모든 일에 사사건건 끼여들어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아들만 귀하게 생각하는 상배할머니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인간적인 삶, 함께 사는 삶이 일맥상통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상배할머니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는 역할을 한다. 어느 한 인물도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모두(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이런 인물일 것이다'라는 예측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은이와 어렸을 때부터 한동네에 살아서 자매나 다름없이 자랐기에 영은이와 관련된 일에는 발벗고 나서는 정아네 이야기도 있는데 돌이켜 보니 정아 이야기는 기억에 많이 남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정아 이야기에서 동희의 언니인 용희의 역할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공부만 하는 이기적인 인물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아에게 세심하게 신경써 주는 모습을 보니 인상적이었다. 아니, 감동적이었다. 

동희의 문병을 억지로 왔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머리로는 주택가 동네를 얼른 떠나고 싶다고 하지만 가슴이 자꾸 머뭇거리게 만드는 영은이를 보며 우리네 옛 동네를 떠올렸다. 예전의 동네는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는데 지금의 아파트라는 것이 생기면서 그런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 간혹 친하게 지내는 집이 있어도 그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공동체라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품어줄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이웃과 현재의 이웃은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이든 본인이든 연령대가 맞지 않으면 왕래하지 않고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이웃의 냄새가 느껴져서 이 책이 더 따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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