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 느림보 그림책 12
이민희 지음 / 느림보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아주 강렬한 메시지가 전해지는 책. 그래서 읽고 나면 일단 통쾌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작가가 일갈한 '사람들'에 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매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아무 할 일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면 하다가도 막상 일이 없으면 괜히 허전하고 허탈해서 결국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나를 되돌아 본다. 그나마 적어도 남에게 내 일을 대신 맡기는 것을 꺼려한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으며. 그러니까 적어도 돼지가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겼던 일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많고 많은 동물 중 왜 돼지를 택했을까. 흔히 돼지를 먹보에 미련하다고 하기 때문일까. 어쨌든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단다. 3분의 2 가량을 돼지들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어려운 연구를 하고 멋진 건물도 짓고 여가도 즐길 줄 안다. 돼지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형태만 돼지일 뿐 사람의 모습 그대로다. 할 일도 너무 많아서 밥 먹는 시간도 아껴야 할 판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대신 일해줄 무언가가 없을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사람들이다. 돼지들이 보기에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다 대신 일을 시킨다. 원시 생활 모습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영하는 모습 뒤로 모나리자와 뭉크의 절규가 있다. 물론, 주인공은 모두 돼지로 바뀌어 있다. 이런 식의 그림은 어린이 책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제 돼지들은 춤추고 놀기만 하면 된다. 돼지가 하던 일은 똑똑한 사람들이 다 한다. 하필이면 왜 똑똑한 사람들을 선택했을까. 좀 덜 똑똑한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고. 그랬으면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돼지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또한 똑똑한 척척로봇을 만드는 걸 보면 그 상태에서는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인가 보다. 자신들의 일을 대신해 줄 수 있어야 하니까. 똑똑하지 않으면 일이 줄어들지 않을 것 아닌가. 

돼지가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하면서 서서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돼지로 변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첫 장의 돼지 그림이 전부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그 후에는 사람들의 생활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미 앞에서 돼지가 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전철을 밟으리라고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에 치여 시무룩하고 생기라고는 없는 모습의 사람을 보며 혹시 이게 현재 내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기지만 그렇다고 일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텐데. 그나저나 마지막 그림, 압권이다. 모두 '단추'만 누르고 있는 모습이라니. 각 집에 한 명씩 그런 사람 있지 않을까. 하긴 리모컨이 어디 한 두 개라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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