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보니 마루 기둥이 휘어진 것이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다. 게다가 제목도 시골집이 살아났다니 그럼 귀신이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인가 싶었다. 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가서 겪는 이야기가 많이 있으니 그중 하나려니 했다. 특히 무서운 이야기.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뭐, 완전히 빗나갔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공포가 아니라는 얘기다. 강이, 산이, 들이 세 쌍둥이네는 시골로 이사를 갔다. 앞으로 펼쳐질 일을 보면 세쌍둥이들을 데리고 아파트에서는 살기 힘들겠지 싶다. 저 마루에 누워 있으면 엄청 시원하겠다. 대개 마루는 땅에서 떨어져 있는데다 뒤쪽에 문이 있어서 바람이 잘 통한다. 게다가 널찍한 마당도 있으니 답답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처음에 아파트 숲으로 이사왔을 때가 생각난다. 시골에서 살 때는 더울 때 밖에 나가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면 마음이 시원해졌는데, 아파트에서 살 때는 공원으로 나가도 온통 아파트라 하늘도 보이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 오히려 답답했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동물인지라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셋은 신 나게 뛰어다니며 말썽을 부린다. 어른의 기준으로 봤을 때야 말썽이지 쌍둥이들은 그게 바로 놀이다. 우물에 돌 던지고 장독대에 올라가기도 한다. 그림만 봐도 아슬아슬하다.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와 술래잡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돌아다니며 말썽부리느라 술래잡기도 잊어버린 듯하다. 대문 문고리에 매달리질 않나 문턱에 걸터앉아 놀질 않나, 보기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난다. 할머니는 술래라는 사실도 잊은 채 아이들 뒤를 쫓아다니며 말리기 바쁘다. 도대체 저 할머니는 누굴까. 그 의문은 마지막에 가서야 풀렸다. 엄마 아빠가 외출해도 아이들은 따라갈 생각을 안한다. 만약 아파트에서 살았다면 아이들만 두고 나갈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이 집에 있으려고 할까. 게임을 제외하면 놀거리가 없는 게 바로 아파트의 생활이다. 그렇게 아이들만 남아 있는 집에 어둠이 찾아드니 낮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럴 때 화장실이 가고 싶단다. 아이들도 '화장실은' 아파트가 더 좋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세쌍둥이의 수난이 시작된다. 화장실에 갔더니 뒷간 귀신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쫓아오고 수문장이 아이들을 혼내준다. 뒷간 귀신을 피해 가는 곳마다 그곳의 신을 만나니 아이들이 놀랠 만도 하다. 그러나 뒷간 귀신을 제외한 신은 무섭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만나는 신을 가만히 살펴보면 낮에 놀던 곳과 연결이 된다. 그러니까 이야기 하나하나가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일거라 오해를 했지만 이쯤되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전통 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 화장실에 사는 뒷간 귀신, 즉 측신을 비롯해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과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삼신까지 두루두루 만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을에 추수를 하고 나면 시루떡을 해서 집안 곳곳에 갖다 놓았다. 당시는 그걸 왜 하는지 몰랐다가 아이 키우면서 이런저런 책을 보며 알았다. 마침 이번 휴가 때 닭실마을을 다녀왔다. 한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고 있는 마을이다. 대문도 이처럼 운치있게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했다. 지금의 직선만 있는 아파트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 안에는 널찍한 마당도 있다. 물론 그 옆으로는 세쌍둥이가 집으로 뛰어갈 때 나오는 담장도 있다.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길을 걷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시에서는 주변을 돌아볼 새 없이 무조건 앞만 보며 걸었는데 여기서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주거환경이 변한 게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너무 많은 게 변했다. 그러면서 덩달아 너무 많은 것이 사라졌다. 나 또한 그러한 중간 매개자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발전해도 전통을 잊어서는 안 될텐데. 그래서 자꾸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