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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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중국에 출장 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이나 안타까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것 정도다. 다만, 친구 어머니가 그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건너서 들었다.(대신 성수대교 붕괴 때는 몇 시간 전에 그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당시 일련의 커다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던 때라 삼풍백화점도 그런 일들 중 하나로 남았다. 물론 그걸 소재로 나온 영화도 있지만 연속성은 없어 보인다. 

첫 이야기가 백화점이 무너진다고 하니 바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어른이라면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원인도 아니고 부실공사로 백화점이 무너진 일은 전무후무한 일일 테니까. 그러면 이 소설이 언제를 이야기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다지 오래전 일도 아니고, 나도 사회생활을 막 하던 때의 이야기니 모든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세컨드인 박선녀의 삶을 따라가서 그냥 읽기만 하면 됐다. 어려운 살림에 일찍 사회에 나가 어찌어찌 하다보니 술장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영감의 둘째 부인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박선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김진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했다. 이건 거의 역사서나 다름없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해방되어 전쟁까지 치르고 그것도 모자라 군부독재 시절과 민주화를 거치는 과정을 고스란히 통과한다. 정말이지 현대사를 압축해서 들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현재 모든 사람의 로망이자 권력과 재력의 목적지인 강남 형성사까지 곁들여진다. 예전에는 현재 강남 지역이 벌판이었다느니 힘겹게 사는 동네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그곳이 생긴 과정은 잘 몰랐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영화 <친구>를 연상시키는 주먹들의 세력변화도 그려진다. 마치 조폭 영화를 보는 듯 그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나온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사를 따로 보여주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 가서는 서로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또한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실제의 지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인물(비록 가끔 가명을 썼지만)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누구를 말하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현대사의 질곡을 거칠게나마 훑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깊은 울림 같은 그런 것, 책을 덮고 나서 멍해지는 그런 느낌이 없다. 뭔지 모르겠지만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소설을 지식으로 접근한 느낌이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책을 덮고 났을 때 혹은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강남이 만들어질 때 이랬구나 내지는 사람이 약삭빠르게 움직여야 잘 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가끔은, 이래서 부동산으로 부자된 사람이 많으니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아직도 부동산에 모든 걸 투자하는구나라는, 약간 허탈함마저 느꼈다. 언제 기회되면 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에게 현재 만날 수 있는 좋은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이런 책을 읽고도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는 나의 이 메마른 감수성을 탓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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