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에 아무래도 지금까지 읽었던 종류의 책과는 다른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 단편집을 찾았다. 그러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은 만나기 어려웠다. 괜찮다 싶으면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아이가 읽기 힘들다고 하고 어떤 것은 너무 세세한 것까지 설명해 주고 있어서 스스로 생각할 기회마저 빼앗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 이 책을 만났다. 일단 출판사 인지도가 있으니 믿음이 갔다.
내가 학교 다니면서 단편을 읽을 때는 그 참맛을 잘 몰랐던 듯하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어느 순간순간에 그 때 읽었던 것들이 생각나곤 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우리 단편이 얼마나 좋은 작품이었던가를. 그래서 딸에게도 그런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 말이 너무 어렵단다. 또 한 가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물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알고 있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에서 읽으려니 당췌 재미가 없단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건대 아무리 그래도 읽어두면 두고두고 마음의 양식이 된다는 걸 알기에 읽으라고 강력히 권한다.
올해부터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23종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 얘기는 실린 작품의 편수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어느 교과서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접하지 못한 소설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꼭 모든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지만 그래도 많이 읽어서 손해볼 일은 없으니 이 책이 반가울 수밖에.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부터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각 소설을 읽고 활동할 수 있는 활동지를 첨부하고 있는데, 책 읽기조차 공부로 접근하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또 그걸 보고 도움받는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한 쪽만 보고 판단할 건 못된다.
나도 전쟁이나 일제 수탈기를 겪지 않았다는 점은 요즘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쓴 이야기는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족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란 게 있는 것 같다. 처음엔 아들의 다리 한 쪽이 없는 걸 보고 몹시 실망하지만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애쓰는 장면(<수난 이대>)은 여타의 경험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애달픈 역사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래서 우리 단편을 읽으라는가 보다. 이런 걸 청소년들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아니, 당장은 못 느끼더라도 그들도 언젠가는 느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