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랏차차 도깨비죽 신나는 책읽기 24
신주선 지음, 윤보원 그림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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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영화나 동화를 볼 때 신화와 성서를 모르면 이해하는 정도가 확연히 낮아진다. 상당히 많은 곳에서 신화를 차용하는 걸 보며 부럽기도 했다. 신화를 모르고 있을 때는 상당히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있는 것을 살짝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판타지 작품에서는 신화가 없었다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신화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얼마전에 모임에서 판타지 작품에 대해 토론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에게도 재미있고 오래전부터 가꿔온 신화가 많은데 왜 우리는 그런 것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일까하고 말이다. 문선이 작가의 <마두의 말씨앗>을 읽고 나서 이처럼 우리 신화를 차용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 뒤를 잇는 작품이 없어 아쉽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드디어 우리 신화를 재미있게 풀어낸 또 다른 작품을 만났다. 굳이 어린이문학평론가의 '한국적 판타지의 가능성을 유연하게 보여준 작품'이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동화를 어느 정도 읽어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판타지가 탄생하기에 여건이 척박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조그만 비껴나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얼마나 다양한 신화가 있는가 말이다. 우리도 이러한 신화를 차용하고 조금만 변용한다면 충분히 멋진 판타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없으니 공감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다만 아직 우리 어린이들이 우리 신화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 많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긴 하지만. 

우리네 농촌에서는 원래 가을걷이가 끝나면 햅쌀로 떡을 해서 집안 구석구석에 놓아둔다. 아직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주로 도시에서, 그것도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이 그런 풍습을 알 리가 없을 것이다. 여하튼 이 책에서는 부엌에 산다는 조왕신과 산, 강, 들을 대표하는 도깨비들이 나오고 터줏대감이 나온다. 그나마 여러 책에서 조왕신이나 터줏대감, 화장실에 사는 신에 대한 이야기는 나왔기 때문에 이 정도는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집에 갔다가 밤에 화장실에 가려다 부엌에서 조왕할미가 쑨 죽을 먹고 도깨비 씨름에 휘말리게 된 홍주. 밤새도록 도깨비들을 피해 도망다니느라 독자도 함께 정신이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도망다녀야하는 건지. 그렇게 도망다니는 와중에도 삼신할미에게 왜 도깨비들이랑 씨름을 하는지 듣고 환경 문제에 대한 것도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씨름에서 지게 될 도깨비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간에게는 집에 사는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에 결국 터줏대감이 이긴다. 그렇지만 홍주는 그 와중에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한다는 걸 깨닫는다. 홍주가 잠시 도깨비에게 연민을 품을 때 과연 어떤 결론이라야 모두 윈윈할까 궁금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주인공이다. 결국 도깨비들이 졌으니까. 그렇지만 홍주는 이제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독자 또한 그럴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판타지, 앞으로도 더욱 많이 나와서 점차 발전해갔으면 좋겠다. 어디 음식만 신토불이가 있겠나, 이야기도 신토불이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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