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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분필, 춤추는 모자 ㅣ 문원아이 저학년문고 16
주느비에브 브리삭 외 지음, 이효숙 외 옮김 / 도서출판 문원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단편동화집은 대개 그 중 한 편을 제목으로 쓰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두 편을 다 제목에 넣었다. 두 편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가. 그러고 보니 두 편의 작가가 다르다. 모두 공원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비올레트가 나오는 분필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환상 세계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비올레트도 처음에는 할머니가 떨어트리고 간 분필을 그냥 평범한 분필일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말 평범한 분필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즉 비올레트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 게다.
헌데 비올레트는 분필을 들고 왜 혀로 핥아볼 생각을 했을까. 분필은 학교에서 '쓰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분명 비올레트는 보통의 아이들하고는 다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 분필이 마법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걸 안 비올레트는 친구를 '만든' 다음 커다란 문을 하나 그린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친구와 떠난다. 이제 더 이상 분필은 없는데 비올레트는 어떻게 돌아오지? 신나게 친구와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왜 이리 허전하던지. 마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남쪽의 초원 순난앵>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한다. 거기서 두 아이는 현실의 힘든 상황을 피해 현실보다 훨씬 좋은 그곳을 향해 떠난 거였지만 여기서 비올레트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왜? 원래 판타지는 나간 곳이 있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지만 여기서는 나가기만 했다. 일련의 공식을 따르지 않은 셈이다. 서서히 다양한 판타지를 만날 기회가 늘어나는가 보다. 하지만 저학년이 읽는 동화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린 독자들이 뭔가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공원에서 주운 모자에 얽힌 이야기다. 때로는 사람의 의지가 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그런 이야기. 그러나 작가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무료하게 지내는 할아버지에게 모자는 그냥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삶'이요, 활력소였다는 생각도 든다. 걷기도 힘들어 보이던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모자를 쓰더니 날다시피 가버린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중간중간 연결고리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토마가 공원에서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다가 어른들에게 끌려갔는데 어떻게 다시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토마가 있는 곳으로 왔던 것 같은데 그런 정황을 몇 번 읽은 후에야 알았다. 프랑스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 정서와 많이 달라서 몰입하기 힘든 면이 있는 듯하다.(나만 그런가?) 하지만 현실과 분리시키지 않은 판타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