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던 책을 이제야 만났다. 딸도 예전에 친구들이 이 책을 무지 좋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딸은 이런 책에 그다지 매력을 못 느낀다. 워낙 스토리가 있는 창작 위주로만 읽어서 그런가 보다. 반면 둘째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나오는 유머가 좀 유치하다나. 좀 컸다고 이런 게 유치하단다. 내 보기에는 전혀 유치하지 않더구만. 사실 꽤 어려운 단어들도 많이 나온다.) 만약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그것도 일부러 들어간 게 아니라 정말 아무 대책도 없이 갔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냥 며칠 있는 거라면 낭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면 낭만의 니은도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게다. 그나마 노빈손은 과학 지식도 상당하고 운동 신경도 꽤 있나 보다. 무인도에서 이처럼 오래 버티니 말이다. 말이 그렇지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야생동물과 곤충들, 어휴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하지만 노빈손은 굴하지 않고 보금자리도 마련하고 불도 피워서 음식도 제대로 찾아 먹었다. 부싯돌로 불 피우는 걸 실패하고 결국 돋보기로 했지, 아마.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불씨를 꺼트리지 않을 수 있었는지 신기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옛날 사람들이 살던 방식 그대로다.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라지만 만약 현대 문명의 기초가 되는 전기와 석유가 없다면, 아니 없는 곳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결국 노빈손은 원시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셈이다. 일전에 여행갈 때 둘째가 무척 걱정을 했다. 만약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하냐는 거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들은 척도 안 했지만 노빈손처럼 이런 상황이 될까 두려워한다. 작년 여름에 배를 탈 때도 걱정을 했다. 그래서 '무인도에 간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이야기를 하면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장난으로 받아들인다. 안 그러면 너무 걱정되니까. 그래도 일단 무인도에 갔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기본책을 만들어 보았다. 표지를 꾸미라고 했더니 이렇게 책 표지의 글씨체를 따라했다. 예전에는 이런 거 하면 무척 어려워하더니 이젠 쉽게 한다. 그만큼 컸다는 얘기겠지. 무인도에 가면 갖고 갈 것 세 가지는? 이런 질문을 흔히 한다. 둘째가 처음엔 '의, 식, 주'란단다. 즉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걸 그냥 적은 것이다. 집을 어떻게 가지고 갈 거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조금 생각한다. 그러더니 결국 '도구'라고 썼다. 세 가지라고 했는데 도구로 뭉뚱그리길래 좀 더 자세히 적으랬더니 집을 짓기 위한 웬만한 도구를 다 적는다. 중간에 몇 개의 질문이 있고 마지막에는 책에서 나온 표를 그려서 과연 무인도에 떨어지면 며칠이나 버틸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둘째는 결정적으로 식물을 구별하지 못해서 7일 밖에 못 견딘단다. 이렇게 만든 책. 기본책으로 접어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책만들기였다. 무인도에 간다는 설정이 때론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꼭 무인도가 아니더라도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럴 때 다양하게 생각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면 비록 노빈손처럼 그렇게 화려한 무인도 생활을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