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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걸 ㅣ 푸른도서관 35
이은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읽으면서 중학생들의 생각과 생활을 어쩜 이렇게 정확히 포착했을까 싶었다. 지금 중학생인 딸 이야기로 치환해서 읽어도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사실 처음엔 단편모음집인줄 모르고 첫 번째 글을 읽으며 한창 외모에 관심 갖는 딸을 생각하며 현실이가 과연 살을 뺄 수 있을까, 엄마가 재혼하면 아빠와 생활하면서 어떻게 적응할까 궁금해하며 다음 장을 넘긴 순간 뭔가 이상했다. 이건 하나의 장이 끝났을 때의 분위기가 아니잖아. 그랬다. 이건 여기서 끝나는 거였다. 공부도 그저 그렇고 외모도 그저 그런데다가 요즘 사람들이 보기엔 뚱뚱하기까지 한 주인공의 생활을 따라다니며 살펴본 결과 지금 여기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을 알았다. 아, 그래서 이름도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상담자원봉사 나가는 곳 선생님이 그러신다. 요즘 애들 보면 참 불공평하다는 걸 느낀다고. 공부 잘하는 애들이 예쁘고 음악도 잘하고 미술도 잘 한다고. 문득 어디선가 보았던 만화도 떠오른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잘못하면 그냥 들어가고 못하는 애가 걸리면 맞는 그림이. 아무리 공정한 세상이라 우겨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다가왔던 이야기는 바로 연예인을 우상으로 여기며 쫓아다닌다는 두 번째 이야기다. 딸이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특정 팬클럽에 가입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걸 보면 세나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딸은 직접 쫓아다니는 건 시간낭비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천만다행으로. 어른이 보기에는 방송에서 보여지는 일부의 모습이 미화되어서 그렇지 사실은 그들도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청소년들에게는 그런 게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아니, 말로는 알고 있다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연예인의 허상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러니까 어른들이 꼭 필요로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거봐, 연예인들이 팬 앞에서는 감사하다 어쩐다 하지만 뒤에서는 오히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잖아라고 말이다. 한편으론 청소년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다기보다 어른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계기는 제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딸은 그래도 우리 누구누구는 이렇게 겉다르고 속다르게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아동청소년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은 정형화되어 있는 듯하다. 공부 못하고 학교에서 문제아로 통하는 인물은 집안 형편이나 환경이 안 좋다. 반면 공부 잘하는 인물은 부모가 극성맞게 통제하고 끌어가는데 아이는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며 친구도 별로 없다는 식의 공식 말이다. 세 번째 이야기인 야간비행에 나오는 예령이도 후자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때로는 진짜 욕심이 있어서 스스로도 열심히 하고 성격도 괜찮으며 부모가 뒷바라지도 잘 해주는 아이도 있지 않을까. 하긴 그러면 굳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필요가 없겠지만. 어쨌든 예령이는 엄마의 극성으로 특목고에 합격(추가합격이지만 합격은 합격이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다.)했지만 자신의 의지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런 부모가 많이 있고 거기에 순응하는 아이들 또한 많이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것이 아이에게 결코 좋지 않은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게 부모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서 끝까지(여기서 끝이라는 말은 좋은 대학을 의미한다.) 잘 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선택은 각자가 하는 수밖에.
딸의 아슬아슬한 사춘기를 겪은 것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럼 그렇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건 그냥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직접 그 안에 들어가서 겪었던 것들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마지막 기러기 아빠 이야기를 읽으며 가족의 해체와 누구를 위한 생활일까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냥 안타까웠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사회적으로 접근해서 할 말이 많은 것들이지만 너무 뻔한 이야기라 넘어가야겠다. 다만 네 개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만 청소년들이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각자의 삶은 누가 대신 설계해 주는 것도 아니고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라는 점,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나머지 문제도 조금씩 길이 보인다는 점을 부디 알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