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레시피 - 레벨 3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이미애 지음, 문구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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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친척이 누구일까. 아마 외할머니가 아닐까 싶다. 외할머니라는 단어(인물까지 갈 필요도 없이 단어 그 자체에서조차)에서는 친근하고 푸근하며 구수하고 뭔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진다. 사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보편적인 정서가 흐르기 때문이 아닐런지. 

이 책에서는 고집불통 외할머니와 마찬가지로 고집불통 손녀의 좌충우돌 방학생활을 담은 이야기가 유쾌하면서도 때론 가슴 찡하게 펼쳐진다. 제목을 보면 이야기보다 음식에 더 중점을 둔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다 읽고 나면 레시피 보다는 외할머니의 사랑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여름방학 숙제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보내기로 한 서현이. 요즘 아이들에게 인터넷도 안 되고 유선방송도 나오지 않는 시골에서 보내라고 하면 그들에게는 유배생활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서현이는 형제도 없으니 얼마나 심심할까. 그러나 아이들은 적응하는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재래식 화장실에도 적응했다. 아무것도 할 게 없어 무료하고 심심할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다. 서현이도 그랬다. 처음에는 너무 심심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안다. 그리고 자연이 어떤 것인지도 마음으로 느낀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서먹한 사이였던 외할머니와 손녀의 사이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할머니의 다리를 선뜻 주물러드리겠다고 나서지 못했던 처음에 비해 나중에는 할머니와 농담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할머니의 레시피를 보며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소재 정도로만 생각했다. 물론 그 레시피를 보며 군침도 흘리고 해 먹어야겠다고 마음도 먹었지만 그냥 색다르게 만든 장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그 의미가 다가오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요리'에 대한 의미를 손녀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즉 그것을 손수 적어 놓은 것이 바로 그 레시피였다. 할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 

할머니와 서현이가 때로는 삐졌다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면 정 들어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걸죽한 경상도 사투리와 투박한 시골 생활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책,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전혀 생소한 이에게는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우리 아이들은 저학년 때까지 방학하면 한 달을 시골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고학년이 되면서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일주일로 줄었다(물론 서현이 외할머니네처럼 그런 화장실은 아니며 인터넷도 된다). 나중에 크면 서현이처럼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보낸 생활을 그리워하겠지. 

처음엔 표지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이젠 표지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역시 처음 볼 때는 약간 촌스럽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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