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타리에이 베소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어린이 책 속에서 살다가 가끔 이렇게 나를 위한 소설을 읽으면 한동안 멍하다. 주로 비소설류만 읽다가 이러한 소설은 가끔 읽어서인지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타리에이 베소스는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자랑하는 작가란다. 생전에 노벨상 후보에 세 번이나 올랐다니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이 작품을 쓰면서 고립감과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느끼기 위해 산에서 은둔생활을 했다하니 단순히 책상에 앉아 펜으로만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기 전에 겉표지 그림을 보면 전원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왜 이런 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왜 자그마한 배가 호수에 덩그마니 떠 있는지 알겠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독자는, 그래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줄곧 마티스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나도 모르게 마티스와 동일시된다. 그러면서 가끔은 헤게가 조금만 더 동생에게 신경을 써 주었으면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하지만 무조건 헤게만 탓할 수 있을까. 마흔이 될 때까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으니 누나로서 할 만큼 했다. 그래서인지 마티스의 결심보다 남아 있는 누나가 느껴야 할 슬픔에 더 가슴이 아프다. 분명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을 할 테니까. 어쩌면 그러한 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그냥 마티스가 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것에서 끝냈기 때문에 독자는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감수성이 풍부한 마티스는 멧도요새의 암시를 알아채지만 메마르고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는 그러한 마티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애먹었다. 마티스는 왜 자꾸 멧도요새에 집착하는 것일까. 하긴 멧도요새뿐만 아니라 마티스와 헤게 나무에도 집착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강박증은 아닐런지. 아니면 지적 수준이 어린아이 정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뒤에는 감수성이 보통 사람 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걱정하던 마티스의 이야기가 하나의 복선은 아니었을까를 문득 깨닫는다. '마티스의 아름다운 방황을 담은 걸작'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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