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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ㅣ 모두가 친구 14
조나단 빈 지음, 엄혜숙 옮김 / 고래이야기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자그마한 정사각형의 판형에 낯선 작가의 그림책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 작가 소개를 볼 즈음에는 벌써 이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하다. 조나단 빈은 이 책으로 2008년 샬롯 졸로토 아너상과 보스턴 글로브 혼북 상을 받았으며 그 밖에도 여러 목록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라고 의문을 가졌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 그러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사람이라면 절대 공감하지 못할 장면이 펼쳐진다. 엄마는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아이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 옆에는 까만 고양이가 앉아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평화로운가.
밤이 되어 온 식구가 자러 들어간다. 아이도 자려고 노력하지만 잠이 안 오는 모양이다. 엄마 아빠의 숨소리도 들리고 남동생과 여동생의 숨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문득 살짝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눈을 감고 그 바람을 느끼는 아이의 모습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장면에서는 읽는 이도 무심결에 숨을 들이킨다.
아이는 바람을 따라 베개랑 이불이랑 담요을 가지고 어딘가로 올라간다. 이불을 질질 끌며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비록 아이 얼굴이 눈만 살짝 찍혀 있는 그림이지만 낑낑대며 올라가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아마도 뒤로 한껏 젖혀진 아이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바람을 따라 간 곳은 바로 옥상이다.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는 풍경은 잠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분명 도시 한가운데라고 했건만 그림은 머나먼 곳을 향해서인지 한적한 자연만이 있을 뿐이다. 복잡한 도시라도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음을 작가는 두 화면 가득 보여준다. 그리고 편안하게 잠을 자는 아이 옆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은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 글 어디에도 엄마가 어떻게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독자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이를 따라 올라갔지만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엄마의 모습과 잠 든 후에 아이 옆에서 가만히 지켜주는 그림은 그 어떤 설명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배려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건물은 의미가 없어지고 산과 강만이 유의미하게 다가오도록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그림과, 더 높은 곳에서 온전히 자연을 느끼는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여름 밤에 잠이 안 오는데 밖에 나갈 형편이 안 된다면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