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선생님을 위한 비밀 선물 문원아이 11
라헐 판 코에이 지음, 강혜경 옮김, 정경희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선생님이 나오는 책, 특히 이렇게 선생님을 직접 제목에 넣는 경우는 대개 아이들과 관계가 좋은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런데 표지에 금기시 되는 소재를 다뤘단다. 그 아래에 글귀를 보면 금기시 되는 소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 다양한 어린이 책을 보았고, 죽음을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보았지만 선생님의 죽음을 다룬 책은 못 보았다. 간혹 선생님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죽음을 다룬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의인화해서 표현한다. 그런데 이것은 둘러가지 않는다. 

문득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시는지 그 시간만 되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대학 시절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걸 들으면서 어렴풋이 대학 생활에을 동경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암이라고 했다. 담임이 아니었기에 자세한 건 몰랐고 기억나지도 않지만 머리가 빠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본인이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선생님은 방학 이후에 나오지 않으셨고(아마 그만 두셨던 것 같다.)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끝까지 곁에서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몰랐다. 슬픔의 깊이를. 참 이상하다. 그 선생님과 직접적인 교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배운 것도 아니기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 선생님께 배웠다는 것조차 꿈속인 것처럼 가물거릴 정도다. 그런데 왜 그러한 이야기는 다 생각이 나는 것일까. 어린 마음에도 그 선생님이 무척 좋았고 그 분의 죽음이 안타까웠던가 보다. 

나는 한 학기 정도 밖에 함께 하지 않았던 선생님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4년을 함께 한 선생님이라면 어떨까. 게다가 처음 만난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오스트리아는 초등학교 다니는 4년 동안 한 선생님과 공부한단다. 한 반 아이들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이지 부모와 별다를 것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선생님이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니, 받아들이기나 할까. 과연 아이들이 죽음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의미를 알고 있다 해도 알고 있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르다. 그러기에 율리우스 엄마의 행동도 이해가 간다. 독자야 아이들과 선생님 편이기 때문에 율리우스 엄마의 행동이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싶다. 되도록이면 직접 경험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심정 말이다. 

이야기는 선생님이 조만간 돌아가실 것을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페이지는 무슨 이야기로 이끌어 갈까 괜한 걱정도 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괜한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조금 있으면 선생님을 볼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기적을 바라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다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선생님의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 주로 율리우스를 따라가는데 그냥 평범한 4학년짜리 아이의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책을 덮고 나면 아릿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죽었다고, 혹은 죽을 것이라고 다른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너무 잘 표현했기 때문에. 또한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 '관'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며 슬픔을 받아들이고 곧 이겨낼 것임을 알겠다. 울지 않으려고 잘 버텼는데 결국 훌쩍이며 마지막 장을 넘겼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의 행동이 수긍이 갈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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