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버스 파랑새 그림책 79
제인 고드윈 글, 안나 워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은 차를 탈 때 앞에 타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나이가 어려 앞에 앉으면 안 될때 그렇다. 하긴 누구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긴 하다. 아이들은 큰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갈 때면 뒤에 앉고 싶어하지만 학원 차에서는 앞에 타고 싶어하나 보다. 둘째도 가끔 앞에 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대개 앞자리는 힘 있는 아이가 차지한다. 키티가 앞자리에 타고 싶지만 작아서 못 앉는 것처럼.

물론 이미 그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키가 작아서 눈치보느라 못 앉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언니와 함께 앉고 싶어도 거부당한다. 언니는 동생보다 친구랑 더 앉고 싶으니까. 동생을 달고 다니는 언니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동생인 키티의 행동을 따라가므로 나도 모르게 키티의 입장에 동화된다. 그래서 언니가 키티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가는 모습을 보며 괜히 안타깝고 야속하다. 그래도 키티는 언니가 든든한 버팀목이다. 적어도 내리는 곳에서 키티를 챙기니까. 

그러던 어느 날 언니 없이 혼자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키티는 그만 잠이 들고 만다. 그 다음 이야기는 뻔하다. 하지만 키티에게는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잠을 잤기 때문에 그토록 고대하던 맨 앞자리에도 타보니 말이다. 사실 처음에 키티 혼자 못 내렸고, 운전사 아저씨가 내렸을 때는 걱정이 되었다. 가끔 유치원 등하교 차 안에서 아이가 있는 것을 미처 모르고 문을 잠가 사고가 일어나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키티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온 식구가 집 앞에 나와 키티를 맞이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특히 언니가 제일 먼저 뛰어 나와 반기는 모습. 그리고 안심이 된다. 아, 따스한 이야기구나하고 말이다.  

그런데 대개 그림책은 속지까지도 어떤 의미가 있던데 여기에 있는 그림은 내용과 연결이 안된다.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본문 안에서 이런 이야기는 없다. 그림 작가가 키티처럼 키가 작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데 그럼 그 작가와 관련된 것들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아님 아무 의미 없는 것인데 내가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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