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에 빠진 아이 상상도서관 (다림)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지음, 리키 블랑코 그림, 김정하 옮김 / 다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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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도 이렇게 철학적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책. 인간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는 책.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들이다. 작가 소개를 보니 여행을 많이 다니며 주로 인권, 청소년 폭력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을 주로 썼단다. 어쩐지. 여기서 보여지는 모습도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특히 어른의 아집과 교만, 독선을 비꼰다. 때로는 그래서 속이 시원한 면도 있었다. 다만 지금도 비판적인 시각이 상당히 강한 딸이 읽으면 더 비판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살짝 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마르크에 대한 별다른 설명없이 구멍에 빠진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구멍이란 길에 있는 맨홀을 생각하면 안된다. 그런 것이라면 철학적 사유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일종의 사고일 테니까. 마르크가 빠진 구멍은 자기 몸에 꼭 맞는 마춤구멍이다. 게다가 원래 길에는 어떠한 구멍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르크는 빠졌다. 웬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독자라면 여기서 그토록 비판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부디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시길. 

그런데 딱 한 명(사람으로서는)은 마르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본다. 바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지다. 그리고 인간은 아니지만 마르크가 구멍에 빠졌을 때 친구가 되어 준 개 라피도가 있다. 거지는 본인도 예전에 그러한 구멍에 빠진 적이 있기 때문에 마르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구멍이란 물리적인 구멍이 아니라 심리적인 구멍이다. 즉 그 거지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 마르코도 마찬가지다. 엄마 아빠의 문제로 힘들어했고 심지어는 죄책감까지 있었으며 자기의 마음은 젼혀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댔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겠지. 결국 구멍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은 마르코 앞에 놓인 문제를 마주할 힘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마르코가 구멍에 빠졌을 때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위선에 가득 차있다.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며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남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그런데 여기서 등장인물들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으니까. 중간중간 들어 있는, 심지어는 개 라피도의 말조차도 상당히 철학적이다. 그동안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문제들을 평범하게 풀어나간 동화를 보다 이런 책을 보니 신선하다. 음, 동화책에서도 충분히 철학을 논할 수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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