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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 - 청소년인권 이야기
공현 외 지음 / 메이데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아침마다 머리를 만지기 위해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치장하는 딸을 보며 속으로만 구시렁댄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을 치장하는 것이 딸의 권리라는 생각에 그냥 넘긴다. 하지만 치마가 껑충 올라간 것을 볼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말로는 치마 허리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다지만 그걸 쳐다보는 나로서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분명 무릎 위로 살짝 올라가는 것이 예쁘지만 그러면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한다. '조심해!'라고. 사실 내가 보기에도 치마가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것과 위로 올라가는 것의 차이는 확연하다. 그러니 한창 민감한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럴 때면 꼭 이렇게 복장을 일일이 간섭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특히 학교에 입학하기 전 소집일 때 가져온 안내장을 읽는 순간 답답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척 많았고 웬 규정은 그리 까다로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적응'된다. 아이도 나도.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을 위한 중등교육이 지나치게 경쟁적이며 또한 지나치게 규율을 강조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인권을 아주 많이 침해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의 모순과 위험성을 인식한 것이 비단 부모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고 바뀌었으면 하는 것도 있지만, 누군가가 바꿔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내 아이가 아닌 누군가가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암울한 시기였을 때 대학을 보내는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가장 흔한 말이 '데모하지 말아라'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때 누군가가 데모를 하고 시위를 했기 때문에 민주화된 지금(많이 후퇴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보다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소년인권 문제도 나중에 그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까.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볼 일이 있다.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이 과연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의문이다. 휴대전화 압수를 예로 들었는데 만약 휴대전화를 그냥 학생이 가지고 있게 하면 정말 필요할 때만 보고 스스로 자제할 수 있을까. 내 딸을 보건대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보인다. 수업 시간에 수시로 문자를 보낸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고 어쩌고를 떠나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의 교사들이 권위주의적인 것은 사실이다. 권위는 없고 권위주의만 있어서 청소년들에게 질타를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무조건 청소년들의 인권만 강조하며 해결하기에는 이른감이 있어 보인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청소년들은 참 통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글쓴이가 청소년인지 모르겠으나 논리의 허점이 종종 드러났다. 추측형 어미를 쓰며 그것이 마치 사실인 양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만약 이 글을 쓴 사람이 어른이라면 청소년 또래의 자녀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과연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줄까 내지는 여기서 이야기한 그러한 학교생활을 보며 어떻게 행동할까. 모든 것은 내가 그 안에 있을 때와 밖에서 바라볼 때 입장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만약 내가 청소년 시기에 이 책을 보았다면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로 접근을 하다보니 상당부분 불편했다. 때로는 옳은 이야기임에도 속으로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그러나 제도적인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나도 덩달아 통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