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열두 살 동규
손연자 지음, 김산호 그림 / 계수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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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표현한다. 지리적인 거리야 무척 가깝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심리적인 거리가 특정한 경우에 더 멀게 느껴질 뿐 그 외의 것에서는 그다지 멀어보이지 않는다. 이미 젊은이들은 일본 음식과 문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긴 예전에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를 거쳤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다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잊지는 말아야겠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의 아이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 이야기라도 꾸준히 나와야 하는 것일 게다. 

사실 나도 그런 것을 겪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암울했던 시대를 이야기하면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 이면에는 너무 아픈 이야기가 많아서 피하고 싶은 면도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힘들게 오로지 목숨을 잇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읽는 것도 힘들고 약탈자의 수탈에 힘없이 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읽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그러나 힘들다고 무작정 피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를 인정하고 제대로 알아야만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나마 이 책은 긍정적인 마무리를 하고 있어 마음이 조금 편하다. 비록 동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시고 넉넉하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결국 만주로 도망치지만 그곳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행복한 결말처럼 보인다. 워낙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모진 일을 많이 겪고 가족과도 만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니 말이다. 물론 동규 아버지도 마지막에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동규도 아버지 뒤를 이어 작은 힘이나마 보태니 어찌 뿌듯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곳으로 이주했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알고 있기에 동규네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해방되기 5년 전, 특히 더 심한 수탈이 행해지던 그 시기를 살아가던 어느 한 가정의 이야기. 적어도 민족적 자존심은 지키고자 애쓰는 할아버지와 나머지 식구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희망을 본다. 아무리 힘들던 시기라도 개구쟁이 열두 살의 동규는 딱 그 나이의 아이답게 말썽도 부리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성장해서 이제 더 이상 철부지 동규가 아니라 의젓한 청년으로 거듭난다. 그러면서 조금씩 현실에 눈 뜨고 나라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본다.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하면서 성장했다고 하는 편이 나으려나. 어쨌든 암울한 시대를 잘 묘사하면서도 너무 가라앉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뒷표지에 있는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되찾아 주신 이 나라'라는 마지막 말에 눈길이 멎는다. 동규 아버지처럼 이름도 남기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 가면서 노력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일 게다. 비록 독립을 순수하게 우리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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