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공화국 1 - 아이들만 사는 세상
알렉상드르 자르뎅 글, 잉그리드 몽시 그림, 정미애 옮김 / 파랑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딸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한다. 며칠만 친구들과 보내고 싶다고. 어른들의 간섭없이 자기들끼리 살고 싶단다. 그래서 먹을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했더니 미리 준비를 다 해놓으면 되다나. 문득 이 책 제목을 보자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아이들끼리 일정 기간 동안 생활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읽어보니 '세상'이라는 단어가 왜 있는지 알겠다. 잠시만 그들끼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델리브랑스라는 어느 섬나라가 있다. 아니 진짜 하나의 독립된 나라는 아니고 프랑스에 속하는 섬일 뿐이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어차피 약간의 단절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른들이 있을 때는 그렇게 고립되거나 단절된 세상은 아니었다. 본토와 정기적으로 물건을 실은 배가 드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웃 섬에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가자 도우러 어른들이 떠나면서 섬에는 아이들을 보호해줄 어른이 딱 한 명만 남게 된다. 그러나 그 어른은 가장 지독하고 못된 어른의 표상이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상당히 비관적이다. 주인공 아리는 부모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아니 환영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학대를 받는다. 학교 선생님으로부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른에 대해 좋은 감정일 리 없다. 그런데 마침 어른들이 한 명 밖에 남지 않았으니 아리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그렇다고 아리가 처음부터 유일하게 남은 어른인 따귀 선생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워낙 악독하게 하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생을 피해 아리에게 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 책에서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라던가 머리를 공처럼 발로 찬다는 묘사는 아무리 어린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해도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들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현실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작가는 철저히 어린이 편에서 이야기를 서술한다. 나도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어른을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에 속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많이 불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리가 바라보는 어른의 세계는 상당히 비틀리고 굴절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부터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러한 아리가 섬에 어른이 없는 상태에서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항상 강요만 하고 아이들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강조하며 어른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어른이 되는 것조차 거부한다. 따라서 신체적 조건은 어른이 될지언정 마음과 행동은 여전히 어린이다. 그러나 모든 어린이가 어른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다프나는 동생이 그리워하는 부모의 소식을 듣기 위해 섬을 떠나면서 1권의 이야기는 끝난다. 

글쎄. 솔직히, 읽으면서 상당히 불편했다.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을 떠나서 지나치게 앞서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물론 어른들의 세계를 꼬집고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한다지만 시각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어른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게 섬의 아이들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것은 가만두는지도 의문이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나 아직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아니면 그런 동심이 없는 내 자신을 탓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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