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갠 후에 - 뉴베리상 수상작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9
노르마 폭스 메이저 지음, 정미영 옮김 / 도서출판 문원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권위적인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내게 시아버지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분이었다. 권위적인 것을 싫어해서 그런 삶을 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이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가 생활했던 환경과는 너무도 달랐다. 하긴 부모님이 권위적인데도 내가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을 테니 후자가 맞는 것 같다. 어쨌든 결혼 초에는 아버님의 말씀에 아무 말도 못하는 형제들을 보며 무척 답답했었다. 내가 보기에는 괜한 고집이고 아집인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뀔 분도 아니거니와 그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시아버지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떠나가실 내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지금은 두 아버지가 모두 살아계시지만 언젠가는... 사람은 어차피 그런 것이니까. 레이첼의 할아버지(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외할아버지다.)를 보니 어쩜 그리 우리 시아버지 같은지. 손주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은 고사하고 따스한 말 한 마디 해주지 않는다. 레이첼의 할아버지처럼 어깃장이나 놓기 일쑤다. 그나마 레이첼은 가까이 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할아버지를 만나기 때문에 나중에 선뜻 할아버지를 돌보게 된 것일 게다.  

레이첼의 할아버지는 모든 사람에게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서 불편하게 하는 분이다.(이 또한 시아버지와 똑같다.) 그래서 아들과 손자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만 간직한 채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물론 레이첼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얼마 못 사실 거라는 소리를 듣고는 의무감도 아니고 할아버지에게 잘해드리고 싶어서도 아닌, 그야말로 뭔지 모르는 것에 이끌리다시피 할아버지의 산책길에 기꺼이 동행한다. 그리고 결국 할아버지를 진정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의 고약한 말과 행동을 무조건 참지도 않는다. 때로는 할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다가 그런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는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혼동을 겪는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잘 표현되었다. 

처음에는 자잘한 글씨와 두께, 그리고 자세한 묘사 때문에 어느 만큼 읽었나를 가늠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레이첼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떠나 보낼까 안타까웠고 또한 레이첼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려나 걱정하기 바빴다. 내내 훌쩍이면서. 예상했던 대로 할아버지는 떠났고 식구들이 모두 모인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모두를. 하지만 누가 뭐래도 레이첼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대신 진작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못해 할아버지를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레이첼은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루이스와 데이트도 하며 할아버지를 가끔 생각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효를 무척이나 강조하는 동양권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가족으로서 부양하고 떠나 보내고 그리워하다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면서도 열여섯 소녀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지은이 소개에 '세대와 인종 국가를 초월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들어있는 작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책을 읽으며 계속 훌쩍거렸던 이유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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