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달콤한 □□ 보름달문고 26
이민혜 지음, 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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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내 손에 들어오면 일단 날짜와 아이들 이름을 써 놓는다. 다른 사람들과 돌려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누구 책인지 쉽게 구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책을 받아놓고 며칠 후에 읽으려고 겉표지를 넘기는 순간 아무런 표시가 없다. 오자마자 날짜를 써 놓는데 왜 이 책만 빠졌을까라고 혼자 구시렁대며 써 넣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잠깐 일이 있어 책갈피를 끼워 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그런데 전에 읽었던 내용이 아니다. 왜 그러지? 순간 당황해서 뒤집어 보니 거기에도 똑같은 제목이 눈에 띈다. 아차, 그렇지. 이 책은 양쪽으로 읽게 되어 있었지. 분명 알고 있었는데도 잠시 깜빡했던 것이다. 물론 날짜도 전에 써 놓았는데 반대쪽을 펼치는 바람에 안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날짜가 양쪽에 모두 씌어졌다. 

동화책에서 이런 형식이 있었던가. 그림책에서는 간혹 보았던 형태지만 동화책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동일 시간대 동일 장소에서의 일을 여러 명이 각자의 시선에서 교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있어도, 이처럼 완전히 두 개의 이야기가 한 권에서 펼쳐지는 동화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난 책을 읽을 때 작가 소개부터 지은이의 말까지 꼼꼼히 읽는 편이다. 그러나 간혹 작가 소개를 먼저 읽으면 책에 대한 내용보다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먼저 생기는 것 같아 일부러 안 읽는 경우도 있다. 이 책도 괜히 내용 먼저 보고 싶었다. 그런데 흔히 있는 글쓴이의 말이 없다. 공교롭게도 지혜의 이야기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양한 환경의 주인공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아이들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그나마 일진이의 경우는 그래도 지혜보다는 훨씬 나은 편에 속한다. 비록 부모들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채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해도 지혜처럼 마음의 상처가 심한 것은 아닐 테니까. 처음에 지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황했다. 부모에게 학대 받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방치된 상태로 있는 지혜의 경우, 정말 이런 부모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그런 아이들이 있고 심지어는 더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단지 동화 속 이야기라고 간단히 치부하기 힘들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혜의 부모는 미성숙한 어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지혜를 괴롭히는 것이라기 보다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 지 몰라 자기 안에 쌓여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은 아닐런지.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지혜 엄마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깨닫고 자존감을 회복했을 때 지혜에게 딸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했던 것일 게다. 하지만 그간 딸에게 했던 행동과 비교할 때 너무 급격하게 변한 것 같다. 또한 갑자기 지혜 아버지도 지혜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보인다는 설정이 억지스럽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마음을 내비쳤음에도 서로 융화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이란 그렇게 명쾌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그것이 더 현실적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지혜의 가족이 갑자기 속마음을 내비친 것은 아마도 그동안 모든 것을 배척하려고만 했던 지혜가 일진이와의 소통으로 어느 정도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기에 엄마와 아빠가 자신들의 속마음을 내비친 것일 게다. 

그럼 일진이 부모는 성숙한 어른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시나 그렇지 않다. 그런데 솔직히 일진이 엄마의 행동을 따라가다가 문득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어른=성숙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지만 그래도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나마 일진이는 건강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긴 했어도 새아빠거 더없이 좋은 분이기에 지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은 아닐런지. 지혜의 입장에서 서술될 때는 정의파로 보였던 일진이가 실은 남의 눈치를 보느라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얼떨결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약간 김이 새기도 했다. 만약 일진이 이야기 먼저 읽었더라면 일진이가 멋있고 괜찮은 녀석이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읽었을 텐데.  

지혜가 가장 열악한 환경이라서 그런지 지혜에 대한 기억이 가장 크게 남는다. 하지만 지혜 부모에 대한 문제까지 해결하려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지혜 문제가 분산되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지혜의 문제는 분명 그들의 부모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그 연결고리가 약했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내가 지혜 문제를 부모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명확하게 판결을 내려주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한 명으로 인해 이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리라고 낙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혜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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