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산 도로랑 힘찬문고 52
임정자 지음, 홍선주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우연찮은 기회 덕분에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한국인이며 한국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나 책을 이야기할 때 과연 우리나라 작품을 얼마나 꼽을 것인가. 마찬가지로 지금 어린이 책을 열심히 읽고 토론하는 중에도 우리나라 작품과 외국의 작품 중 어느 것에 더 열광하는가. 물론 외국 작품과 우리 작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어린이 책 역사와 외국의 그것은 차이가 나도 너무나 많이 나니까. 하지만 외국에서 어린이 책이 시작된 초창기의 작품들이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있고 감동을 주는 데 반해 우리의 초창기 작품들은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어린이 책을 공부하는 어른들에게는 꾸준히 읽히고 있을지 몰라도 어린이들에게는 외면받은 지 오래다. 

왜 책 이야기를 하지 않고 뜬금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백두산을 올라 천지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흥과 백두산에 얽힌 백호에 대한 이야기를 도저히 그냥 묻어둘 수 없어서 끄집어 낸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란다. 요즘 많은 어린이 책들이 현재의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들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책은 시대가 언제인지 모르는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오늘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과연 어느 시대쯤인지 가늠하느라 애먹었다. 하지만 그 시대라는 것을 언제라고 꼬집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백두산은 지금도 존재하고 그 산이 영산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책들을 지금의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점이다. 분명 이런 책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아이들이 선뜻 선택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이것은 단순히 내 착각이자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흔히 백호는 영물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야 어떻든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한 백호를 잡겠다고 큰 소리 치며 나간 오만한 백 포수는 결국 돌아오지 못한다. 그의 아들 도로랑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솔직히 이런 구성이 좀 마음에 안든다.)고 백호를 찾아 흰산을 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호랑이 처녀 호령아를 만난다. 물론 도로랑의 아버지를 잡아 먹은(더 죄를 짓지 못하도록 백 포수를 거둔) 산신 백호도 만나지만 그 백호에게 활을 쏘는 바람에 어둠왕을 깨우고 만다. 어둠왕을 깨운 도로랑 덕분에 산은 온통 죽음의 산으로 변하고 눈보라가 쉼 없이 친다. 그래서 흰산을 구하기 위해 도로랑과 호령아, 흰머리 할아버지는 온갖 고생을 한다. 간단하게 온갖 고생이라고 적었지만 셋은 정말 말도 못할 고생을 한다. 하긴 그래야 주인공이 성장하는 법이니까.

마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적인 판타지 영화. 그러나 우연이 많이 일어나고 너무 친절하게 상황 설명을 하고 있다. 왜 독자에게 더 많은 역할을 주지 않는 것일까. 또한 꼭 전설이라고 해서 이렇듯 과거를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충분히 현대의 아이들에게 어울릴 법한 이야기로 재탄생시켜도 되지 않았을까. 뭔가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우리 이야기가 혹 외면받을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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