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약속 사회계약론 나의 고전 읽기 3
김성은 지음, 장 자크 루소 원작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소위 말하는 고전의 맛을 예전에는 몰랐다. 특히 고전소설 종류는 좀 읽었지만 비소설은 거의 접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내게는 어렵다.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으려니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누군가가 해설을 해주는 형식이라면 무슨 소리인지 몰라 헤매지 않아도 되고 저자의 삶도 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다른 사람이 힘들게 연구해 놓은 것을 쉽게 받아먹는 것 같아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게 바로 이 책을 기획한 의도라 생각하고 기쁘게 읽었다. 

다른 책은 몰라도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다른 형식의 책으로 읽었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이런 책들은 한 번 읽고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인가 보다. 게다가 머리 잘 돌아가는 20대도 아니니 더하겠지. 이 책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원저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는 데 있다. 어느 저작이든 시대와 개인의 삶을 떠나서 오로지 작품만으로 평가하는 것 보다는 이처럼 골고루 살펴보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로지 작품만 갖고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와 같은 책은 그런 방법이 맞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정치제도들이 18세기에 고민하고 있었던 것들이라니 놀랍다. 당시 유럽은 대륙 전체가 하나의 국가처럼은 아니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 사상이나 제도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유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나의 사상이 나오면 빠르게 퍼져나갔고 거기에 대해 찬반에 대한 저작들이 다시 쏟아져 나오는 등 계속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아시아 대륙은 지나치게 경직되었기에 활발한 사상적 교류가 없었고 고립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우리의 사상을 보면 중국과 관련된 것들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을 정도로 독자적인 사상이 살아남지 못했다. 그나마 조선 후기에 와서 실학 덕분에 좀 나아졌다고나 할까. 

루소는 <에밀>과 <사회계약론> 덕분에 후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고 잘 알려졌지만 두 저작 때문에 쫓겨다녀야 했다고 한다. 특히 그 책들 중 종교에 대한 비판적 관점 때문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어느 특정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단체를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쩜 지금의 우리 상황을 이처럼 잘 이야기하고 있는지 놀라웠다. 그렇게 보면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가 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그들의 권리를 잠시 맡긴 것 뿐인데 자신들이 마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양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말이다. 특히 요즘의 세태를 보면서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에 대해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 많은 사상가들이 학식이 풍부하고 덕이 많은 '내가' 우매한 민중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루소는 진정 민중들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한 최초의 학자였다고 한다. 즉 다른 책들은 통치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민중을 통제하느냐에 초점을 맞췄다면 루소는 민중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것이었다. 그래서 루소 자신은 혁명가 기질이 없었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루소에 대해 좋지 않은 평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인물은 좋은 평도 있고 나쁜 평도 있기에 그것을 가지고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에 대한 평이 어떻든 민중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했다는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우월주의, 엘리트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올바른 제도와 길이 있어도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아, 그나저나 지금의 답답한 이 현실을 어찌하면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