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메타포 11
크리스 린치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마디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마도 이건 가해자가 화자로 설정되어서 나도 모르게 화자에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피해자인 지지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키어가 아주 못되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생각되지 않았을까. 게다가 화자인 키어는 처음부터 자신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착했으며 지금도 가족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아주 건강한 청소년이라는 것을 강조하니 독자는 거기에 동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키어가 지지에게 항변하고 설득하는 모습과 키어가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엇갈리며 전개된다. 특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지지를 설득하는 부분에서는 별다른 설명없이 서로의 주장만 하고 있어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둘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 독자로서는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연히 드러나면서 이제는 해결책이 없으며 돌이킬 수도 없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리고 독자는 자꾸만 화자인 키어의 입장에 있게 되면서 안타깝고 심지어는 지지가 심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키어는 잘못이 없고 지지가 너무 하는 것일까. 그간의 키어의 행동을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누나들이 있는 기숙사로 찾아간 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차를 돌려보내고 그것을 지지에게 사실대로 바로 말하지 못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누나가 키어에게 하는 말을 보면 키어가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차를 돌려보낸 것도 일종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다만 본인은 절대로 그렇게 영악하지 않다고 미리부터 독자들을 세뇌시켰기에 독자들이 넘어간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착했으며 간혹 결과가 나빴어도 자신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상황이 그랬던 것 뿐이라고 줄곧 주장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후에 지지에게 저지른 행동도 그렇게 변명하기 위한 장치라고나 할까.

시점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데이트 강간(옮긴이의 말에서 그렇게 표현했다.)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주인공이 단지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청소년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게 독자의 연령을 구분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한창 멋진 사랑을 이룰 기회가 많은 20대에게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이유는 자꾸 키어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지지의 입장에서 서술된, 그러니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그러면 확실히 문제를 인식하는 방향이 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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