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버스를 타지 마시오 보름달문고 28
고재은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권위적인 것을 몹시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지 아이들에게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려 한다.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부당한 것이 또 일을까. 그런데 가끔은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권위를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아마 그것을 한번 사용하면 자꾸 사용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되도록이면 맛을 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좀 심하긴 하지만 보통의 아빠들과 그다지 다르지도 않은 준수 아빠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태도와 속으로만 안타까워할 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결국 아이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엄마. 만약 준수 엄마가 전업주부였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주었을까. 글쎄, 어쩌면 남편의 권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직장을 다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 때문에 준수와 준기는 할머니 집에 있다가 저녁에 집에 오는 길에 동생 준기를 잃어버리자 동생을 찾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이상한 버스에 타면서 준수의 판타지행이 시작된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동생을 잃어버리는 큰 사건이 발생하면 어찌되었든 모두가 힘을 합쳐 찾아보는데 준수네는 그런 보통의 가정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 혼자 어떻게든 동생을 찾아보리라 결심하는 것이겠지. 

아빠의 권위에 짓눌려 아이가 자신의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의 말을 차분하게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엄마도 그렇고 이 가정은 외형적으로는 정상으로 보일지라도 결코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다. 과연 이것이 책 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가볍게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어린이 책에서 그려지는 대개의 부모 모습은 준수네 부모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겠지. 그럼, 여기서 잠깐 내 모습은 어떨까 뒤를 돌아보고...

어른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준수가 동생을 찾아 나서면서 당당하게(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면서 차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현실로 돌아와서 그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복종만 했던 아빠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판타지 속에 들어갔던 일이 나중에는 꿈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걱정하며(그럼 얼마나 김빠지겠는가.) 읽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어른의 권위와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말 환상적인 판타지로 버무린 멋진 책이다. 우리의 판타지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 책이기도 하다. 다만 마지막에 준수가 강해져서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갑자기 남편에게 당당히 맞서는 장면과 미래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들이 모두 얽히고 설킨 부분이 헷갈리다 못해 모호한 감이 없지 않지만 대단한 책이다. 

저자가 현직 초등학교 교사라는데 지금까지 읽었던 교사가 쓴 작품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뭐랄까. 교사들이 쓰는 책들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썼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책은 진짜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진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암튼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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