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상당히 강한 인상의 제목이다. 처음엔 무슨 추리 소설인줄 알았다. 하지만 저자를 보니 역사 관련 책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기질 때문에 음지에 가려진 인물에 큰 관심을 가진다고 했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행여 한 줄이라도 놓칠까봐 천천히 읽었다. 남아 있는 쪽수가 적어질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여타의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아쉬움이 컸다. 벌써 다 끝났나 하는 생각에.

평소에도 사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이런 류의 책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눌러야 하고 어떠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상당히 중의적인 표현을 하며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점 등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정치인이 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겉에 드러나는 말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임금과 신하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간혹 저저가 '혹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로지 주자학을 제일로 쳤던 시기에 양명학을 받아들이고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도  강화학파를 이룰 정도로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정제두를 비롯하여 유득공, 윤휴, 조식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난다. 아니, 도대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주장하는데 왜 그걸 꺾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조금만 호흡을 가다듬고 역사란 과거를 지나 현재를 본다는 사실을 대입해서 현재를 보면 지금이라고 더 나아진 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그 사대의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에서 하는 것이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 현실은 생각지도 않고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 어디 한 두 가지던가. 그런데 꼭 진짜로 좋은 것은 배척한다는 게 지금의 문제지만 말이다.

대동법을 실시하려고 애썼던 김육의 이야기나 유수원, 박제가, 이익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한번 한숨짓지 않을 수 없었다. 공납의 폐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뻔한 상황에서도 대동법이나 호포제를 실시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양반들의 반대 때문이라는 사실(이건 진작에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다시 들으면 또 열받는다.)은 어쩜 그리 지금의 상황과 똑같을까. 그러니 당시 양반들을 탓해 무엇하랴.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양반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역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 말도 안 되는 것이건만 왜 그 당시 백성들은 가만히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품다가도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래, 지금도 그런 걸 뭐. 소위 말하는 상류층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세금을 훨씬 적게 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군대에 안 가지 않는가 말이다. 그나마 조금 제자리를 찾아가던 세제가 이 정권 들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 하니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어쩜 몇 백 년이 지났는데도 상황은 이리 똑같은 것일까. 그리고 그걸 뻔히 아는데도 왜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조선시대 백성들이 무지해서 그랬다는 생각을 했었으니 마찬가지로 지금의 시민도 그런 것인가. 다만 모든 사람들의 학력이 조금 높아진 것 뿐인가 보다.

역사란 과거를 지나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하는 것이라는 말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하긴 그때야 무조건 사실을 외울 뿐이었지 현재와 접목시킬 생각을 못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당시 시대에 도전했던 사람들을 읽으며 과연 현재에 시대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들의 주장을 과거가 된 뒤에 새겨 듣지 말고 현재 새겨 듣는다면 변화가 훨씬 빨리 다가 올텐데. 그런 사람을 가려내는 안목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발굴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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