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보던 <톰 소여의 모험> 만화를 요즘 다시 한다. 지인과 이야기하는 도중 그 만화가 나오자 톰 소여에 허크가 나오는데 그럼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오는 허크와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허크의 관계가 어찌되느냐고 한다. 글쎄, 갑자기 그 둘의 관계가 엉키기 시작한다. 만약 그것을 책으로 읽었다면 아무 문제없이 동일 작가의 전편과 후속편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불행히도 어린 시절에 그런 책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만화만 보았으니 헷갈릴 수밖에. 그런 의문점을 가지고 집에 와서 찾아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 이런 게 바로 운명일까, 아니면 피그말리온 효과일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불우한 환경에 처한 허크지만 그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정상적인 가정이었다면 어떻게 참고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아이다. 오죽하면 교양있는 문명인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더글러스 아줌마로부터 벗어나고자 유랑 생활을 선택하고 나중에도 샐리 아줌마가 교양있는 문명인으로 만들 기미가 보이자 떠날 결심을 하겠는가. 그야말로 짜여져 있는 삶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자유롭게 산다면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와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허크지만 학대가 점점 심해지자 탈출을 하면서 허크의 모험은 시작된다. 그리고 우연히 도망쳐 나온 왓슨 아줌마의 노예 짐을 만나 함께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면서 허크는 조금씩 성장한다. 거대한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행은 독자를 미지의 세계로 탐험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한다. 분명 허크와 짐의 여행은 순탄한 것이 아니며 낭만적인 여행도 아니건만 나도 모르게 그런 여행을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노예 제도가 폐지되지 않은 시기에 짐의 탈출을 도와주는 허크의 행동은 위험천만한 것임에도 끝까지 짐을 나몰라라 하지 않는다. 비록 불우한 환경이지만 백인이기 때문에 짐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인 허크를 보니, 만약 짐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었다면 사회에 엄청난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허크를 통해 인간의 악한 면과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마지막에 톰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했던 허크가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의아하다. 이 점이 이 작품의 한계라고도 한다지. 지금까지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한 톰의 이미지가 변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모험심 많고 자유를 갈구하는 소년에서 단순히 자신의 모험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모험을 하는 약간은 이기적인 귀족 백인 소년의 이미지로 대치되었다고나 할까. 이 책은 허크의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모험과 함께 몸과 정신이 성장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자 사회를 비판한 풍자소설로 봐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