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타냥 창비아동문고 242
김리리 지음, 이승현 그림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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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난히 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눈에 많이 띈다. 게다가 읽는 도중 보신탕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마침 얼마전에 초복이 지난 터라 불편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실 소나 돼지도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가축인데 유독 개는 그런 동물과는 레벨이 다르게 취급된다. 우리 아이들도 보신탕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하긴 키우고 있는 강아지를 사정상 시골에 며칠 두기로 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보고싶다고 노래를 하다시피 하는 아이들이니 말 다했지.

우연히 개의 이름을 지어준 관계로 개와 특별한 인연이 된 슬픈 눈 민호. 학교에서 친구들과 교류하지도 않고 자기 안에 갇혀 사는 민호는 친구들이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의 아픔을 들키고 싶지 않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은 걱정도 없고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서 그런 것이겠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운 아빠를 향해 당당하게 말 한 마디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자기 안으로 더욱 숨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달타냥이라고 자신이 이름 붙여준 개를 키우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먼저 친구의 존재를 의식했다는 점이다. 물론 민호도 아빠가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잘 노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아빠가 변한 후부터는 철저히 혼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달타냥을 키우면서 장만이와 삼총사가 될 정도로 친하게 지내며 각자의 사정을 조금씩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만 불행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지. 모든 사람에게는 얼마간의 시련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어린 민호가 알기에는 아직 벅찼을지도 모른다.

개 달타냥의 시선과 민호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그러나 외국동화에서 사용한 이러한 방식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바다 아이>라는 책이 그런 구성이었는데 거기서는 끝까지 독자들도 상황을 전부 알지 못하도록 구성해 놓은 반면 여기서는 독자가 모든 상황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긴박감은 좀 덜한 편이다.)을 취하고 있어서 민호의 마음이었다가 다시 달타냥의 입장을 반복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청자의 입김에 의해 결론이 변경가능한 드라마였다면 달타냥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처음에는 그런 운명을 만든 작가가 원망스러웠으나 마지막에 민호 아빠가 다치고 왜 다쳤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겁많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달타냥은 어쩌면 민호 자신의 모습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악의에 가득 차 있고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달타냥의 형인 태풍의 모습은 아내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무기력함에 길을 잃은 민호 아빠 자신 아닐까. 그렇다면 달타냥과 태풍의 죽음은 민호와 아빠의 나쁜 면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니 그러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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