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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리아드 (양장, 한정판)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전산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생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것이다. 따라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도.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그런 로봇이 나올거라는 환상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냥 흘려들었다. 왜? 그리 간단히 이룰 수 없다는 걸 너무나 뻔히 아니까.
사실 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 내게 과학소설이라는 장르는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고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흔히 과학소설이라 함은 공상과학을 제일 먼저 떠올리며 약간은 허무맹랑하거나 로봇으로 통칭되는 기계들이 주인이고 인간이 클라이언트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그렇게 인간을 지배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절대로.
처음에 분명히 투르를과 클라포시우스가 기계라고 이야기를 했건만 읽는 동안 자꾸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착각한다. 그러다가 회로가 어쩌고 나사가 어쩌고 하면 그제서야 '아차'한다. 그만큼 저자는 기계들을 통해서 인간을 은근히 비꼰다. 그 로봇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을 보면 그대로 인간 세계에 적용을 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기계이면서 또 다른 기계를 만들어 그 기계와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한다는 설정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들이 만든 기계가 스스로 발전해서(사실 그랬잖은가.) 투르를이나 클라포시우스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에 생각이 미치면 무한루프에 빠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두 창조자는 본인들이 기계를 만들었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너무 똑똑해서 제어하지 못할 것 같으면 잽싸게 부품을 해체해 버린다. 그럴 때 대개의 SF 소설이라면 기계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창조자가 못 하도록 음모를 꾸밀 텐데 그러진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더 공상과학 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일반 소설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특히 시를 짓는 기계를 만들었을 때 결국 완벽한 시를 짓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나 그 기계를 만들기 위해 태초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에 해당하는 모든 지식을 집어 넣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권위와 불필요한 관료제를 풍자한 글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단순히 기존의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조합하고 뒤틀어서 사용하는 단어들은-비록 읽는데 상당한 수고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이 책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인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를 가듯 '배'를 타고 다른 은하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배라는 것을 지구에서 보듯 물에서 다니는 것으로 이해하고 읽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우리가 우주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아주 보편적인 운송수단이라는 뜻이었을까. 이렇듯 우리는 내가 경험한 범주에서 다른 것을 판단하고 상상하려 한다. 작가는 그것을 보기 좋게 뛰어넘는 것일 테고.
그래도 한때는 프로그래머였던 사람으로서 참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머리가 좀 아팠지만 대신 수많은 전산 용어들이 나올 때는 절로 흥이 났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단어들이냐. 초반부를 읽으면서 마치 일리아드랑 비슷한 구조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목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제대로 파악했다는 소리?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