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지고 훈훈한 이야기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ㅣ 보름달문고 23
김려령 지음, 노석미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그토록 읽고자 했던 책이건만 당장 읽어야 할 의무가 없기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처럼 일찍 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이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새벽까지 눈물을 훔치며 읽고 말았다. 사실 이 작가의 책은 <완득이>를 먼저 읽었던 터라 기대를 한껏했다. 게다가 이 책은 문학동네어린이상 대상 수상작이지 않던가. 그러니 충분히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워낙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입양은 아직 먼 이야기다. 그나마 요즘 공개적으로 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특이한 사람으로 보는 게 사실이다. 거기에서 나는 예외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아니, 솔직히 입양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체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주위에 아이를 원하지만 낳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도 선뜻 입양을 권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입양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 한강이가 다른 이유 때문에 말이 없고 엇나간 것인데도 주위에서는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치부하는 것이나 조금만 잘못해도 입양아라서 그렇다고 단정짓는 것도 모두 그런 전제를 하고 있다. 때론 한강이 말대로 지나치게 관용적이라서 오히려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부터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하늘이는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롭다. 대신  자신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악세사리로 존재하는 것 같아 힘들어한다. 언제나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을 중요시하는 엄마에게 있어 하늘이는 엄마를 빛내주는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엄마가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엄마의 위선을 들춰내는 통쾌한 결말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하늘이 입장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독자는 일방적으로 하늘이의 상황만 보고 하늘이의 마음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에겐 관대하고 남이 있을 때는 엄청 다정하다가도 정작 집에서는 별로 살갑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모습을 보며 분명 자신의 착한 행동을 과시하기 위해 입양을 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또 바쁘다는 핑계로 밖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하늘이와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며 역시 친엄마가 아니라 내지는 아이를 낳아 보지 않은 사람이라 잔정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말투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하늘이 엄마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 역시도 입양아를 똑같이 바라보지 않는 나의 선입견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하늘이 엄마는 오히려 너무 애착이 심해서 그것을 자제하기 위해 일부러 거리두기를 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늘이는 엄마에게서 못 느끼는 진솔한 사랑을 할머니에게서 느낀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하늘이에게 잘해주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엄청 사랑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직설화법을 쓰는 할머니를 보며 위태위태 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놓고 데려다 키워주면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때 내가 더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하늘이는 오히려 그런 말들을 편하게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은 엄마 아빠의 지나친 보호와 눈치보기가 그동안 부담스러웠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할머니의 가장 큰 역할인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일어나는 사건으로 둘의 관계는 확고하게 자리매김한다. 할머니들은 첫손주에 대한 정이 가장 크고 깊다고 한다. 하늘이 할머니도 하늘이 동생이 생긴다해도, 친동생이 생긴다해도 첫정을 쉽게 잊진 못할 것이라며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또 안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만약 하늘이 아빠에게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못 낳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할머니가 입양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며느리를 인정하며 하늘이를 예뻐했을까. 아니, 만약 그렇게 설정을 했다면 작가는 어떻게 전개해 나가고 어떻게 결말을 이끌어 갔을까. 과연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읽고 나서 약간 불안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