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뇌가 쑥쑥 자라는 우리 아이 첫 미술수업
필립 르정드르 지음, 김희정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여자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딸도 한때는 만화 비슷한(다리는 가늘고 긴데다가 얼굴은 조막만한) 그림을 지겹도록 그렸다. 제발 그런 그림 말고 다른 그림 좀 그리라고 해도 조금씩 다르다며 절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어려울 것 같지도 않은 그림을 매일 그것도 틈만 나면 그리는 것을 보고 한심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딸을 인정해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지인의 둘째(당시 일곱 살)가 남자 아이인데도 불구하고(이 고정관념!) 옷 갈아 입히는 인형을 엄청 좋아하는데(물론 지금은 안 그런다.) 한번은 신데렐라를 그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엄마보고 그려달라고 했는데 못 그리겠다고 하자 옆에 있는 나에게까지 차례가 온 것이다. 일단 연필을 받아들고 딸의 그림을 생각해 가며 얼굴을 그리고 몸을 그리려는데, 웬걸... 이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다 다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딸 그림과 같은 모습은 절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그제서야 알았다. 아, 이거 딸이 그리는 게 보통 실력으론 되는 게 아니구나! 난 어렸을 때도 그런 류의 그림은 전혀 그려보질 않아서 그처럼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 나였기에 지금도 누군가가 그림 좀 그려 달라고 종이를 내밀면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예전에 위에서 말한 딸이 어렸을 때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김충원이 그림 그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코너가 있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것만 하면 얼른 달려와서 따라그렸던 기억이 난다. 왜? 나중에 딸이 그려달라고 하면 그거라도 보고 그리려고. 이 책을 보니 문득 그 때가 생각난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겠는가.

아주 간단한 도형으로부터 멋진 동물이 탄생하는 신비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렇게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 있단 말야? 띠지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세모, 네모, 동그라미만 그리다가 이런 그림이 탄생한다면 아이 자신도 놀라지 않을까. 물론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정형화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면 창의력이 떨어지고 말 거라고. 하지만 그건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언제나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글 쓰는 것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글을 베끼면서 습작을 한다잖은가.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림 그리는 방식을 따라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겨서 스스로 다른 방식으로 그릴 생각을 하리라고 본다. 어찌보면 이 책은 아이들에게도 필요하겠지만 부모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 같은 부모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