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항상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거의 잘못된 일을 보며 한심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과거에만 국한된 일일까. 요즘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후세에 무엇이라고 평할지 짐작이 간다.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 국민의 건강권을 송두리째 바칠까. 그것도 그쪽에서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그들의 요구사항을 '알아서' 제시해 주었으니 그들로서는 우리가 얼마나 고마울까. 아니 '우리'가 아니라 일부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이것은 분명 사대주의에 부합된 행동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그걸 모르는 것일까. 하긴 그들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남에게 보여지고 자신들의 위신을 높이는 일이 가장 급했을 텐데. 아, 그리고 또 있다. 앞으로 미국의 세를 등에 업고 국민들을 쉽게 '통치'하기 위한 계산도 들어 있었겠지.

흔히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현실은 그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있을까. 만약 이 책을 작년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한탄하며, 현재를 곱씹으며 읽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유성룡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구나, 인품이 곧고 뛰어난 정치가이자 외교가였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단순히 한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읽은 시점이 하필이면 유성룡이 처한 상황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 현재에 읽었기에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며 읽게 되었다. 일찍이 유성룡에 대한 대략적인 것은 알고 있었기에 유성룡 개인의 위대함보다는 어쩌면 당시 통치자였던 선조의 무능함에 더 격분하며 읽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점이 지금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기에.

무릇 권력이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유셩룡이 살던 시대에도 당쟁 때문에 국정운영은 뒷전이고 서로 상대의 실정을 들추기 바빴던 시기였고 지금도-비록 당쟁이 아니라 정당한 당적을 갖고 있더라도-현안을 현명하게 처리하기 보다는 당리당략에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를 저울질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거기에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통치자는 민심의 방향을 읽고 그들의 요구사항이 뭔지 알아냈어야 하는데 그 또한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자신의 목숨과 권력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명에 빌붙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지금의 대통령도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의 권력을 탄탄하게 만드는데만 집착했다(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지금까지의 대통령 중 가장 힘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대국민 사과라고 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오로지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것 밖에 없다고 항변한 것 아니던가. 제대로 된 사과라면 현 상황을 인정하고 진짜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어야 했다. 어떻게든 당신들을 설득하겠다는 기조를 시종일관 유지하니 듣고 있는 국민들이 화가 날 수밖에. 

당시 선조는 백성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유성룡을 믿고 따르니 그를 제거하기 위해 억지를 썼다. 그래서 결국은 유성룡과 이순신을 함께 잃었다. 어디 유성룡 뿐인가. 자기보다 민심을 더 많이 얻은 신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하고 아첨하거나 힘이 그다지 없는 사람을 곁에 두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이 부분도 지금과 비슷하다. 인물의 됨됨이 보다는 한때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을 기용하고(그러니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만한 통로가 없지.) 권력을 나눠가질 것 같은 자리는 권한을 축소하는 등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수렴되도록 만들었다. 

또한 언제나 최고 권력자 주변에는 실세가 있어 그 주변에 다시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꼬이게 된다. 선조가 유성룡을 영의정에 기용하면 그 주변으로 사람이 몰려든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유성룡의 경우 객관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에 공정을 기했으므로 사사로운 이권이 자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반대로 유성룡이 물러나고(쫓겨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면 다시 암투가 시작되곤 한다. 그래서 유성룡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동인의 영수자리에 있었지만(이때 서인의 영수인 이이도 유성룡과 비슷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우리나라로서 큰 행운이다.) 서인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던 그의 인물됨은 지금을 되돌아보게 한다. 언제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실세 논란이 있곤 한다. 그래서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기도 한다. 이번에도 누가 보아도 실세인데도 본인은 끝까지 아니라면서 요직에 자기 사람을 앉힌다. 과연 그게 대통령에게 득이 되는 일일까. 절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가 다 안다. 그러나 딱 두 사람만 모르는 듯하다. 바로 대통령과 그 실세.

언제나 백성들의 고통을 정확히 꿰뚫었고 그 방법 또한 제대로 알고 있었던 유성룡. 지금은 그런 사람이 왜 없을까. 아니, 어쩌면 어딘가에 있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도 지지 않고 납세의 의무도 지지 않는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강행하지만 결국 있는 자(권력과 경제력)들의 힘에 밀려 모든 것이 원래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유성룡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또한 어쩜 지금의 상황과 이리도 비슷할까. 권력이든 돈이든 있는 자의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 이젠 누구나 다 안다. 게다가 현재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하는데 그 혜택은 있는 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니던가. 일부 강남의 부자들(결국 이들이 권력자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때문에 많은 부동산 관련 법안들이 수정되었고 대기업에게 세금을 덜 걷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아니 누가 그런 정책을 생각해 냈는지 궁금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조선에서는 백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만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질 않다는 점이다. 이번 촛불집회만 보더라도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촛불집회를 해서 무엇을 얻어내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몇몇이 모여 불만은 토로한다고 해서 그들이 의견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럴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것이 바로 민심이고 일반인의 의견표출 아닐까.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만약'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해 보고 싶다. 만약 그 때 유성룡이 실각하지 않고, 아니 나중에 선조가 다시 불러들일 때 나가서 다만 몇 년이라도 제대로 된 정치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그 가정을 지금에 대입해 본다. 만약 지금 국민들이 이렇게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이미 그건 실행된 것이니까 협상을 잘 했다고 가정하고 이런 '만약'을 대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재협상에서 우리가 또 다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서 실질적인 소득도 못 얻고 무기까지 엄청 많이 사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제발 이것만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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