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임옥희 옮김 / 알마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 국내에서는 광우병 파동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어느 기사에서는 소나 돼지를 도살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이 육식에 대해 다루며 육식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파헤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읽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어느 하나를 생각하고 있으면 그와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모두 연관지어 생각하려는 속성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야생동물이 처음 인간에게 다가오고 인간이 그들을 통제하게 된 연유를 누구나가 그렇듯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정말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어쩌면 지극히 현재의 인간을 기준으로 꿰어 맞춘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역시 저자는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역사학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의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고.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했을 때 그를 원숭이처럼 그려놓고 조롱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그렇다면 지금의 원숭이들이 언젠가는 인간이 될 것 아니냐는 강한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현재 가축이 되었지만 그것이 야생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들이 새로운 야생 동물로 바뀌리라는 보장도 없다. 다만 모든 것을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소나 돼지 등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해 주는 가축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강아지나 고양이는 사람이 보호하고 기르는 애완동물일 뿐이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고기를 얻기 위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식품을 제공해야 하는 현재의 비효율적인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한 후기사육시대적인 착취가 줄어들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진정한 천재가 나타나 전기사육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도록 기다려야한다는데 그 또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해법이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만 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도 못하겠다. 어쨌거나 지금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바꿀 만한 방법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우선 이 책을 읽으며 사육의 기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언젠가 천재가 나타나지 않을까. 사실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이렇게 뜯어보니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된다. 그런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이해하는데 애먹었다. 아니면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걸까. 어쨌든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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