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후안 데 파레하 - 신분을 초월한 사제지간의 우정과 예술이야기
엘리자베스 보튼 데 트레비뇨 지음, 김우창 옮김 / 다른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바로 며칠 전 서양미술의 기초를 다룬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참이다. 그런데 또 화가에 대한 책을 읽다니 이런 걸 바로 우연이라고 하는 걸까. 비록 완전한 인물에 대한 책도 아니고 예술에 관한 책도 아니지만 한 인물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유추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흔히 명화집에서 보았던 한 폭의 그림. 그러나 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 벨라스케스라는 이름이 그다지 낯익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처음엔 이름을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대표작인 [궁정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보자 그제서야 많이 봤던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을 정도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 같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벨라스케스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후안 데 파레하로 벨라스케스의 노예다. 실존 인물이라 해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인물에 대해 그리려니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겠지만 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후안 데 파레하의 서술로 전개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예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 보다는 주로 주인인 벨라스케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파레하의 첫 번째 주인이 모두 죽어서 친척에게 상속되었는데 그것이 파레하에게는 행운인 셈이다. 두 번째 주인이 바로 벨라스케스였으니까. 언제나 조용하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자 하는 주인 덕분에 파레하는 비록 신분은 노예였으나 여타의 노예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가장 큰 행운은 바로 파레하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게다. 노예라서 그림을 배울 수도 없었고 주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아무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부분은 작가가 상상해서 만들어진 것이란다. 벨라스케스가 후안을 상속받은 것, 나중에는 자유를 주었다는 것, 벨라스케스가 파레하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것, 무리요가 벨라스케스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것 정도는 사실이나 그 밖의 것들은 그림을 보고 또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보고 작가가 어느 정도 가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후안 데 파레하의 그림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를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이다. 물론 벨라스케스의 여러 작품을 보는 것도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마치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듯한 기분이다. 또한 주인과 노예라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니 '신분을 초월한 사제지간의 우정과 예술이야기'라는 부제가 딱 맞는다. 1960년대에 씌어진 책이라지만 언제나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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