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아 우리시 그림책 12
천정철 시, 이광익 그림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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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우리시그림책 시리즈. 처음 <넉 점 반>을 보면서 그림작가의 상상력에 웃음을 그칠 줄 몰랐고 <영이의 비닐우산>을 보며 감정의 동요를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시라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어린이책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동시건 어린이시건 잘 읽지 않는다. 아니 겁난다. 혹 너무 어렵진 않을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 때문에. 그러나 이 시리즈의 책을 보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기에 이 책도 주저하지 않고 집어든다.

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시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천정철이라는 시인, 처음 듣는다. 그러나 때론 작가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에 그냥 책장부터 넘기기로 한다. 분명 겉표지에 커다란 그림으로 잠자리가 나왔건만, 그리고 줄곧 잠자리 그림이 돌아다니고 있건만 미처 거기엔 신경쓰질 않았다. 그리고 쨍아가 죽었다는데 그게 무얼까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인내심을 갖고 한 장 더 넘기니 과꽃 밑에서 죽은 잠자리 쨍아의 그림이 나온다. 그제서야 앞에서 보았던 그림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사람은 이렇듯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본다. 

개미가 쨍아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모여드는 무수한 개미 그림을 보고 있자니 참 묘한 생각이 든다. 만약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많은 개미들 그림을 보았다면 분명 징그럽다고 생각할텐데 전혀 그렇질 않으니 말이다. 사방에서 수없이 몰려드는 개미 그림을 보고도 오로지 시선은 중간에 자리잡은 잠자리에게서 떠나질 않는다. 점점 잘게 분해되는 잠자리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징그럽다는 생각도, 잠자리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맞다. 잠자리 장례를 치러준다는 개미들의 수많은 모습이 아름답다. 물론 실제로는 먹고 먹히는 관계로 개미는 단지 본능에 따라 자신들의 먹잇감을 운반하는 중이겠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림은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아, 이래서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한다니까. 이래서 내가 그림책을 못 벗어난다니까.

모노타이프 위에 감자나 무, 지우개를 가지고 찍기 기법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흔히 하는 그런 방법을 가지고 이렇게 멋진 그림책을 만들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처음 책장을 넘기며 과꽃을 볼 때부터 화려하지 않으면서 뭔가 아름다운 기운을 느꼈었다. 줄기는 흑백으로 처리하고 오로지 꽃만 화사하게 처리함으로써 강한 대비를 이루는 그림이다. 그리고 개미들이 쨍아를 장사 지내주는 장면, 특히 쨍아의 몸이 점점 작은 알갱이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꽃으로 환생하는 장면은 어떤 것을 느낄 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준다. 잠자리가 죽자 개미가 달려드는 장면을 보고 장례를 치러준다고 생각한 시인도 멋있지만 그것을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작가의 재해석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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