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바라 괴물의 날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나오미양 그림 / 사계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모임에서 우리 환상동화책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마침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할아버지의 뒤주>를 읽고 한 토론이었는데 처음엔 우리의 판타지도 이만큼 수준이 되었구나라고 감탄했다가 외국의 다른 작가의 책을 읽고는 '아직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외국의 분위기에 비해 우리의 판타지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외국이라 함은 은연중에 서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러니 동양권에서는 아직 그 정도로 성숙한 판타지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을 나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였다. 물론 일본의 판타지도 발전했지만 그들의 판타지는 완전한 상상의 세계라기 보다 현실 도피처로서의 판타지 성격이 짙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기에 지금까지 읽었던 몇 편의 판타지 소설을 생각하며 한 말이니 틀릴 수도 있겠지만...

표제작인 [하라바라 괴물의 날]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짤막한 네 편이 있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처음 이야기를 읽을 때부터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판타지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처음 작가 이름을 보고 그냥 신인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타이완 사람이란다. 그렇기에 위에서 동양 운운한 것이다. 그 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판타지가 있단 말인가하고. 인간이 사는 세상과 똑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혀 다르지도 않은 세계를 그리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둘을 충족시키고 있다. 처음 이야기에서 제이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기한 나무 빌딩으로 휴가를 간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뭔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거기에 대해 많이 신경쓰진 않았다. 그런데 제이가 우연히 내렸다가 기차를 놓치게 된 마을에서는 정말 환상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러나 가만히 제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가 사는 세상도 현재 우리가 사는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환상적인 나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마인형이 사람의 명령에 따라 웃기도 하고 입을 벌리기도 하니 말이다.

이렇듯 제이가 잘못 들른 마을이 환상적인 것인지 아니면 원래 제이가 살고 있는 곳이 전부 환상적인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에서 독자는 점점 그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제이가 자신이 속한 세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오히려 하라바라 괴물의 날 축제가 열리는 마을을 이상하게 생각하니 독자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내가 보기엔 전부 이상한데... 그래도 전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해서 간신히 빠져나왔고, 제이의 세상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 즈음이면 독자도 안심한다. 아, 하라바라 괴물의 날에 고초를 겪었던 일이 다 헛고생은 아니었구나 하면서. 그러나 마지막 문단은 독자를 다시 환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알게 된다. 아, 제이가 사는 세상은 다 이상한 것이구나. 서로 연결되어 있던 것이고...

맞다. 모든 이야기가 조금씩은 연결이 되어 있다. 다만 한 가닥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주고 받지 못할 뿐이다. 전혀 독립된 것 같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전혀 있을 수 없는 나라를 그리면서도 유치하지 않고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 그러나 명확히 결론 내리지 못하는 이 기분... 그게 바로 이 책을 읽은 후의 종합적인 내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의 경우 주인공 혼자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너무 길어서(중간의 [눈을 감은 다음에]도 그렇다.) 환상적인 제재였음에도 몰입하는데는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읽고 나면 판타지 동화란 이런 것이구나를 새삼 느끼기도 한다. 처음 이야기에서 제이가 어느 곳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마지막 휴양지>가 생각나기도 했고 개구리가 기찻길을 점령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이 먼저 그려졌다. 아무래도 환상책을 너무 많이 봤고 너무 좋아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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