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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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회사 다닐 때 출장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당시는 하이닉스로 바뀌기 전이었다.)에 다 가 봤다. 그런데 사내 시설이나 휴게실 등 여러 시설면에서 삼성이 확실히 깔끔하고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삼성은 관리를 잘 한다는 느낌도 받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난 지금도 가전 제품을 사면 주로 삼성 대리점을 찾아간다. 그 이유는 A/S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은연중에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광고카피가 머릿속에 내재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전에는 어찌되었든 지금은 가전업계에서 삼성의 독주체제나 다름없다. 가전 3사(물론 일각에서는 대우의 기술력을 빗대어 2.5사라고 하지만) 중 두 곳이 현재 제 구실을 못 하는 실정이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의 영향력은 대단한다. 또한 세계에서도 꽤 인정받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나도 삼성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다른 나라에 이름이 많이 알려지는 걸 바라는 사람이다. 삼성이 망하는 걸 절대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경영구조가 투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단한 법무 인력을 배치해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면서 경영권 세습을 하려고 하는 현재의 그런 상태로는 세계적으로 신망받는 기업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법무부에 있는 인력보다 훨씬 우수한 인재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곳이 바로 삼성 법무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이건희 일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웬만큼 관심만 갖고 있으면 알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왜 정부나 관료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워낙 오래전부터 삼성이 조직적으로 로비를 하고 관료들을 관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그것이 그냥 막연히 그럴 것이다에서 이번에 김용철 변호사의 선언으로 인해 확실하게 드러난 것 뿐이다.

숲에 있으면 그 숲의 크기나 모양을 알 수 없듯이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는 당시에는 그저 하나의 시간으로 인식되다가 나중에 돌이켜보면 혹시 운명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시사저널이 삼성에 관한 기사 때문에 파업을 하고 힘들게 새로운 기틀을 막 마련할 즈음에 마침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거취를 정확히 확정지었다. 그러면서 다른 언론이 하나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한겨레와) 새로 창간한 시사IN은 그 기사를 다루었다. 어찌보면 교묘히 시간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운명이 아니었을까. 만약 시사저널 기자들이 그냥 사측과 타협하고 넘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일전에도 삼성에 관한 기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적도 있었으니 다루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삼성에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일을 자세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룰 수 있었을까. 현 언론이 처한 상황이나 여러 정황상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에 삼성에 관한 사건이 막 터졌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뭐, 지금도 김용철 변호사가 이야기했던 수많은 불법적인 일들이 다 밝혀지리라곤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적어도 그들이 잘못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태도를 보면 마치 선심 쓰듯 내가 다 짊어지겠다라는 식이어서 어이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잖은가. 분명 경영권 승계를 위해 수많은 법을 위반했으니 이제라도 원래대로 돌려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예전부터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부당함과 위험성을 각계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새 정부는 출총제를 완화한단다. 어디 그 뿐인가. 가장 쟁점이 되었던 금산법도 완화해서 결국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고자 '노력'한다. 대선에서도 이것을 정치적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아주 극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곤 별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를 냈더라도 언론이 받아주지 않고 공론화 시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어떤 문제의 원인을 찾다보면 결국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으로 판명날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나.

금산법 철폐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있었던 때에 내가 극구 반대 목소리를 내자 누가 그런다. 금산법을 철폐한다고 해서 삼성이 금방 금융을 소유할 수 없다고. 제도적으로 대기업은 못 갖게 하면 된다나. 그러면서 인터넷 신문에서 그런 식으로 설명이 되었다고 한다(내가 워낙에 조중동을 읽는 사람하고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이야기했기에).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논리는 어디서 많이 본 논리다. 조중동. 사실 보수 일간지를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본다며 내심 치우치지 않는 언론매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그만 더 들여다보면 결국 인터넷 포탈에서 제공하는 기사는 조중동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신문이 사실을 이야기할지언정 진실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한 신문을 꾸준히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논리에 설득당하게 되어있다. 글 잘 쓰는 기자들이 설득하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까.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설득 당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 안타깝다.

삼성에 대항해서 싸운,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일곱 명의 이야기를 싣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신선함은 덜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 제발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실체를 알아보았으면 한다. 삼성 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성과가 오너의 부당한 행동 때문에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그만 덮고 가지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분명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 지금 이런 것들이 결코 삼성을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투명한 삼성을 만들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삼성이 무노조인 이유, 밖에서는 모두들 그만큼 직원들에게 알아서 다 해주고 복지가 잘 되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은 나도 그랬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별의별 방법으로 노조 설립을 막고 그것도 안되면 어용 노조를 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노조 신고를 하기 20분 전에 누군가가 먼저 신고했단다. 아주 극비리에 진행을 했는데도 말이다. 과연 정보력의 삼성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만약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그런 문제도 쉽게 풀릴텐데...

금산법이나 출총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삼성 측에서는(지금은 정부 측에서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으레 외국의 사례를 거론하곤 한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는 우리처럼 순환출자 구조는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자회사는 모회사와 지분이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인용하는 사람들은 속은 안 보고 겉에 있는 것만 이야기한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나타낸 그림을 보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른다. 그 쪽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전혀 상식도 없는 상태에서 보려니 처음에는 굉장히 헷갈렸었다. 나중에야 이해했다. 그게 바로 순환출자구조라는 것이구나라고.

이제 삼성특검도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파헤칠까. 그럴 의지나 있을까 걱정이다. 사실 지난번 국세청이 자료를 거부할 때 기겁하는 줄 알았다. 과연 우리나라가 법치국가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특검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런지... 거대한 삼성이 하루 아침에 개혁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번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변화 가능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삼성은 경영도 깔끔하게 하고 회계부정도 하지 않는 아주 깨끗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삼성에도 좋고 우리 경제에도 좋은 것이니까.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삼성의 비리를 캐면 외국 투자자들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외려 외국 투자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일 게다. 경제를 위해 조금 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해서 대기업 오너에게까지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까딱하다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 듣게 생겼다. 이제 제발 제대로 된 대기업문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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