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 이슬람은 전쟁과 불관용의 종교인가 고정관념 Q 9
폴 발타 지음, 정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구독하던 주간지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읽을 때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고 왜 그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기에 그저 안개 낀 숲속을 걸어가듯 답답한 느낌만 들뿐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비록 내용은 기억이 안 날지라도)그런 기사가 났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걸 보면 꽤나 인상에 남았었나 보다. 당시는 지금처럼 다방면의 책을 읽지 않고 그저 한쪽에만 빠져 있었기에 다른 나라의 문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그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못하겠기에 약간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활자화된 문자를 읽은 것일 뿐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막연히 얻은 결론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는 결코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며 명쾌한 해결법이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내 인식의 변화부터 살펴봐야겠다. 처음 유대인에 대해 접하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치에 의한 학살을 당해야했던 불우한 민족이었다는 점이다. 왜 그랬는지를 알기 이전에 그저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을 때 설움을 많이 받았듯 그들도 그랬겠구나라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랄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교육방법에 관심이 갔다. 아마도 그 시기는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어떻게하면 아이를 똑똑하고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키울까 고민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연 그들의 그런 육아방법이 우리가 무작정 따라할 정도로 올바른 것일까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는 유대인들이 주변 국가들에 행하는 일련의 행동을 보며 아무리 훌륭한 육아를 하더라도 남을 짓밟으며 자신의 이익만을 취한다면 과연 그것이 올바른 교육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예전에 핍박을 받았다고 지금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지식이 얕은 내가 보기에 지금 그들(유대인들)의 행동은 그에 버금간다고 느꼈던 것이다. 거대 권력 미국을 등에 업고 내지는 그들의 뒤에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러나 왜 그들이 나치에게 그러한 학대를 당했는지는 몰랐다.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난히 뒷전으로 밀려났던 지역이 있다. 특별히 어떤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상하게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한편에선 조선시대 때 유배지로 선택될 정도로 소외되었고 그런 탓에 오히려 능력있고 유능한 사람이 많이 배출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다가 그 지역 대통령이 당선된 후 그나마 여러 방면에서 발전이 되었다. 실제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의 격차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왜 유대인들은 그렇게 이유없이 학대를 당했을까. 물론 독일이라는 나라는 유난히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서 자신들의 혈통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미 유럽의 많은 나라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그들의 모든 것이었고 정신적 토대였던 카톨릭을 이해한 뒤에야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터무니 없는 선입견에 의거한 것이고 논리적 근거도 없는 것이라지만 이미 굳어진 '믿음'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었다. 단지 예수를 돈 몇 푼에 팔아넘긴 것이 유대인이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 때문이란다. 예수도 유대인이었건만 그들에게 그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수세기에 걸친 유대인에 대한 학대와 핍박에 대해 가해자가 사과하는 것에서 끝났다면 오늘날 이렇게 해법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유럽인들이 사과의 뜻에서 체결한 조약은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을 혼돈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과 아랍 지역, 그리고 나아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본의 아니게 말려들었다. 왜 그들은 문제의 단초를 제공하고 이제 다시 분쟁의 불씨를 제공하는가. 그러나 더욱 답답한 것은 그들만을 탓하고 있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벌어진 상황이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상황이기에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지난한 삶에 동정이 일고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잘 되길 바란다. 그러나 반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그들의 처지가 충분히 이해되고 얼마나 기가 막힐지 공감이 간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히 이해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솔직한 내 생각은 유대인들이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았었더라도 지금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행동은 합리화될 수 없다고 본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땅에 만족하지 않고 점점 더 욕심을 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영토를 획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그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은 결코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이다. 

흔히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종교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당시 그 종교 문제란 바로 카톨릭,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양의 종교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아랍인들의 종교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종교가 우월하고 훨씬 인간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여진 의견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별다른 걸름망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러나 점차 이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연 카톨릭은 언제나 합리적이었고 인간적이었을까. 종교가 그들을 지배할 때 벌어졌던 갖가지 악행들을 그들은 정작 잊었단 말인가. 지금의 이슬람이 서양인들이 겪었던 예전의 시행착오를 단지 한참 뒤인 '현재' 겪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이슬람에 대한 지나친 배려일까. 언제 어디에나 '전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현재의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전부 맞는 것도 아니고 전부 틀린 것도 아니다. 간혹 그들 중에는 그것을 자신의 권력에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악한 모습은 종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용하려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이슬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아닐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들여다보자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의 문제이며 자원의 문제다. 다만 그것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치장을 했을 뿐이다. 

사실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서구인들이 씌워준 안경을 아직 완전히 벗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은 한다. 이 세 권의 책(<이슬람>, <팔레스타인>, <유대인>)을 읽으며 나 스스로도 많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일례로 팔레스타인인들은 교육열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어도 서로 교류하며 산다고 한다. 며칠 전에 북한에도 과외를 금지하는데도 암암리에 성행한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의아했던 적이 있다. 마치 그곳에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에 대해서도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그리고 가장 많은 (잘못된)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러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그냥 바뀌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힘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도저히 해법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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