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학이 보름달문고 27
문영숙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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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딸이 별이가 할머니와 함께 보는 드라마(제목도 기억이 안 난다.)에 푹 빠졌었다. 그림도 그것만 그렸고 공책도 그 그림으로 된 것만 골랐으며 나중에는 만화책을 사 달라고 얼마나 졸랐던지. 완전 옷만 옛날 옷으로 입었다 뿐이지 사랑 이야기 밖에 없던데. 그런데 그 이야기를 차용하면서 이런 동화를 이끌어내다니 역시 작가는 다른가보다. 나 같은 사람은 말도 안 되는 드라마라며 쳐다보지도 않고 거기서 끝이었는데 말이다.

별이가 있는 현재와 할머니가 들려주는 진외할머니(이쯤 되니까 촌수 따지는 게 헷갈린다.)의 이야기인 과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현재는 별이와 할머니가 보는 드라마를 매개로 하고 있다. 양반이지만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궁녀로 들어간 학이의 궁궐 생활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구한말의 혼란스런 상황도 적절히 버무려진 역사동화라고나 할까. 특히 당시의 대내외 상황과 왕실의 모습을 학이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만약 단순히 학이의 궁녀 생활을 나열한 동화였다면 지루하고 심심했을 것이다. 또 그 상황을 빠져나오는 적당한 계기가 없었을지도 모르고.

여덟 살에 궁으로 들어간 학이. 그것도 모르고 들어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져 살다가 십 년이 지나서 겨우 집에 한 번 다녀갔으니.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학이의 마음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보다는 학이를 통해 궁의 생활, 특히 궁녀의 생활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중간중간 궁녀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물론 학이의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궁녀로 만들어야만 했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쩐지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또한 말녀의 입을 통해 당시 양반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길게 서술하고 있는데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것은 지나치게 어른의 시각에서 동화를 본 탓일까. 그래도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곁들인 동화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에겐 좋은 소식일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에서도 왕족이 가는 곳이면 으례 뒤에 있어야 할 배경 정도로 취급하는 궁녀들의 모습을 들여다볼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싶다. 작가의 전작인 <무덤 속의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작가의 색을 만들어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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