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진 아이 사계절 중학년문고 9
김옥 지음, 김윤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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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 나름대로 그들의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어른의 잣대가 남아있나보다. 이런 책을 읽으면 불편하고 찜찜하니 말이다. 아니, 내가 읽는 건 괜찮아도 아이가 읽는 건 왠지 꺼려지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부모인가 보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하고 밝은 면만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런 부모. 그러나 아이에게 이 세상은 행복하고 환상적인 일들로만 가득 찼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간혹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동배는 그야말로 문제아다. 부모들이 이런 아이와는 친구하지 않길 바라는 전형적인 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에 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빌리는 것이라고 태연하게 생각한다. 대개 어린이책에서 나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겉으로는 그런 행동을 할지라도 속으로는 갈등을 하는데 여기서는 그러질 않는다. 전적으로 아이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다만 동배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과 입을 통해 도둑질이나 하고 싸움질이나 하는 못된 아이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시는 엄마와 (으례 그렇듯이)가끔 집에 오는, 그리고 술을 마시면 항상 싸우는 아빠가 동배의 가족이다. 동배는 아빠를 그다지 반기지 않지만 엄마에게는 상당히 애착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혹시 엄마가 자신을 두고 떠나갈까봐 항상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동배에게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주머니에 든든한 성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남들이 뭐라해도 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용기가 생긴다. 불을 가진 아이, 그가 바로 동배다. 물론 그로 인해 나중에 큰 위험을 당하긴 하지만.

동배는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거나 독자가 자신을 동정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내비칠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불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왜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왜 변화의 기미를 보여주지 않을까라는 어른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동배는 위기에 처하거나 도피하고 싶을 땐 구구단을 외운다. 어렸을 때 아빠가 너무 무섭게 가르치는 바람에 칠단에서 멈추고 말았지만... 그러나 결국 가장 위기의 순간에, 가장 절박한 상황에 모두 다 외운다. 마지막에 동배가 구구단을 외웠다고 소리치며 벅찬 가슴으로 엄마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은 어땠을까. 구구단을 다 외운 것을 자랑할 상황이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도 그 길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동배에게 억눌린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일까. 마지막 동배의 행동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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