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블로그 - 역사와의 새로운 접속 21세기에 조선을 블로깅하다
문명식 외 지음, 노대환 감수 / 생각과느낌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것이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젠 인터넷 없이는 답답해서 못살 것 같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만나기 힘든, 그러나 인터넷이 되는 산속에서는 살 수 있겠다. 그만큼 인터넷에 중독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블로그를 만들고 가꾼지 어언 2년이 되어간다. 누구처럼 여기에 올인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글이나 여행을 갔다 오면 블로그에 정리를 해 놓아야 마음이 놓이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 느낌이 든다. 물론 카페에도 꼬박꼬박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가히 중독 상태다.

그런데 역사와 인터넷이 만났단다. 재미있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펼쳐보는데 감탄사가 먼저 나온다. 정말 흔히 보았던 블로그 형태의 글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정말 아이디어 한번 끝내준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흔히 사극에서 보는 임금의 도도한 자세와 위엄이 가득 들어있는 말씨만 기억날 뿐인데 여기서는 비밀글을 통해 본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인 면이 느껴진다. 또 댓글은 어떤가. 지금의 인터넷 문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포함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플도 있고 한때 유행했던 사기성 글도 있고 콕 찝어서 일갈하는 논객도 있으니 어찌 재미있지 않겠나.

조선 블로그라는 제목 답게 이성계의 블로그부터 시작된다. 태종을 비롯해 세종과 광해군도 있으며 조광조, 이순신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블로그도 있다. 사실을 기반으로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블로그를 만들었다지만 그 인물이 정말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는 공감을 얻으며 읽는 게시글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알려진 인물들의 블로그만 보여준다면 그 또한 뭔가가 빠진 느낌이 들 게다. 그래서 농민을 대표하고 양반을 대표하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의병 카페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의병 활동과 적의 상황을 읽는 맛도 느낄 수 있다. 또 풍속화 카페에서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긍재 김득신 팬들이 자기들이 지지하는 화가를 힐책하는 글을 만나면 달려가 비토하는 모습은 우리의 현재 모습을 비꼬는 듯하다. 거기에는 물론 각 빠들의 습성을 날카롭고 통쾌하게 비판하는 어느 님의 글이 읽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펴낸 계기가 불로구, 갑회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불로구란 여러 개의 칸이 있고 거기에 별개의 글들이 적혀 있는데 그 글을 적은 이는 여기에서도 나오는 세종이나 이순신 등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즉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바로 불로구란다. 그리고 거기에는 대문이라고 하여 다른 인물이 글에 대한 감상이나 댓글을 달아놓았단다. 또 갑회는 의병들, 실학자들, 풍속화 애호가들이 각각 모여 글을 쓰고 대문을 달아서 만든 책이란다. 과연 저자가 이렇게 설명을 했기 때문에 인터넷 공간의 블로그나 카페를 연상하는 것일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당시에도 그처럼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장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바다. 다만 그것이 지금처럼 각자 집에서 가상공간에 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났다는 점이 다를 뿐이겠지. 그러고보면 지구상에 새로울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때로는 몰랐던 것을 새로 알기도 했고 때로는 정말 그랬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간혹 웃음 짓게 만드는(그것이 씁쓸한 웃음이든 통쾌한 웃음이든) 댓글 싸움에 지루한 줄 모르고 조선을 만났다. 그래, 역사가 꼭 딱딱하고 근엄하게 다가와야 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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