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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13
차오원쉬엔 지음, 김택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로 인해 공감할 가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며 읽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외국 어린이 문학이라는 것이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쪽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가끔 일본 어린이 문학을 만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중국, 그것도 공산주의 사회에서 한창 문화대혁명을 외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니. 작가의 <바다소>라는 단편집을 읽으며 뭔가 동양적인 듯하지만 확연히 다른 문화를 느꼈었던지라 이미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왜 그(지청)들이 시골에 가서 일을 해야하는지 선뜻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았고 그들을 맞이하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 또한 무척 낯설었다. 문화대혁명이 무엇인지, 마오쩌뚱이 지청들을 왜 시골로 보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냥 알고 있던 것 뿐이지 마음으로 받아들이진 못했었나보다.
흔히 생각하는 사춘기라는 시기가 일탈을 꿈꾸고 역동적이며 또래문화에 깊이 빠지는 특성을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내가 보낸 사춘기가 아니라 현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춘기>라는 제목을 보며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연상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많은 청소년 문학도 마음속으로 떠올렸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읽고 나서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뭐랄까. 어찌보면 내가 느꼈던 정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주위가 정신없이 변해가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흐르는 시냇물을 연상시키며 한적한 시골에서 주위의 변화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느껴진다.
아마도 배경이 60년대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우리보다 경제성장이 늦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시골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내가 자라던 시골과는 차이가 있지만 정적이며 한적한 시골 모습이 연상되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지금 아이들이 겪는 사춘기 시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 나도 요즘 아이들이라고 통칭되는 딸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빨리 변화하는 현대의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사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되고 특별한 사건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가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뭐야, 하나의 사건이 연결되면서 큰 사건을 계기로 뭔가가 해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게 아니잖아라면서. 마치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카메라가 천천히 따라다니며 보여주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렇게 시미의 특별할 것 없는 생활들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꼭 시미의 일상이 잔잔하고 특별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메이원이라는 누나가 마을에 들어왔고 자신의 조각수업을 도와주며 조금씩 키워나간 짝사랑의 마음이 결코 잔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미는 단지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자꾸 요즘 아이들의 요란한 말과 문자에만 촛점을 맞췄기 때문에 시미의 행동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나이 때 나도 꼭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아니었어도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던 뭔가가 있었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얻었다. 읽을 때는 그저 그렇게 읽었는데 읽고 나서 오히려 잔잔한 파문이 일었던 책이다라고. 그나저나 요즘 아이들은(왜 이렇게 요즘 아이들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살짝 든다. 현대적인 것에 심취해 있는 딸을 보건대 결코 쉬 읽어내려갈 것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