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아들고 두께에 놀랐다. 아니, 이렇게 두껍단 말이야? 게다가 높새바람이라면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인데... 약간 두려움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넘어간다. 오히려 읽는 도중에는 두껍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로써 두께로 책 읽는 대상을 결정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다시금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환상을 가지고 사는데 어른이 되면서 차차 그 환상이 깨져서인지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작가들은 아직도 환상을 가지고 있나보다. 그러니 이런 환상동화를 쓸 수 있는 것이겠지. 이 책은 어떤 매개체나 통로를 통해서 환상의 세계로 갔다가 다시 나온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구조를 따르고 있다. 나니아 이야기 중 하나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는 옷장을 통해서 환상 세계로 들어갔고,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책을 펼쳐 읽으면서 책 속 세상으로 들어갔다. 이 이야기도 어찌보면 <끝없는 이야기>구조랑 비슷하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어떤 책을 빼들고 거기에 박혀 있는 브로치를 꽂으면서 모험은 시작되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정작 아로가 책을 읽는 장면은 마지막에 잠깐 언급될 뿐이다. 왜냐하면 독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아로를 통해 읽었으니까. 아무리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라지만 무조건 그 세계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아로도 처음에 얼떨결에 어떤 세계로 갔다가 다시 나왔잖은가. 그러다가 결국 그것을 못 잊고 다시 찾아가 이번에는 진짜 모험을 한다. 그 통로는 바로 도서관이었다. 아로는 이쪽의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저쪽의 도서관으로 나온다. 그냥 궁금해서 다시 찾은 곳이었지만 이제는 거기서 쉽게 현실 세계로 나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로 자신이 드나들 수 있는 매개체를 잃어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쪽 세계의 위기를 보았고 아로 자신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곳을 그들은 완전한 세계라고 부른다고 했다. 완전한 세계라. 완전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처음에는 완전하다는 것을 완벽하다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세계에서는 싸움도 없고 욕심도 없고 모든 것이 평화로울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역시나 사람이 사는 세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싸움과 시기와 욕심, 그리고 전쟁까지 있으니 말이다. 아니 어찌보면 완전하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막혀 있는 세계라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완전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 특히 현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두 나라로 이루어진 완전한 세계에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약간 받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다른 사람을 도와준 아로는 이제 더이상 어리고 나약한 아이가 아니다. 절망을 넘어 희망을 볼 줄도 알고 책임감이 어떤 것인지도 알았으며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항상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기만 하던 막내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마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만큼 성장을 한 것이리라. 이쪽 불완전한 세계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시켜야 했을 작가가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