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1학년
에마뉘엘 부르디에 글, 엘렌 조르주 그림,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의 고정관념이란 이런 것일까. 제목을 보면서 당연히 '우리'의 의미가 들어가는 줄 알았다. 즉 손주와 할아버지가 함께 1학년 생활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대개의 그림책은 아이들과의 생활이 함께 나와서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이 책은 전적으로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며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일흔다섯의 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에 '다시' 들어가게 된 피에르 할아버지는 원래의 여덟살짜리 1학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양배추를 싫어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피에르 할아버지는 전에 그러니까 다시 1학년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기술자였다. 충분히 자기 삶에 만족한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마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우산이 된 기분'이라고 표현하면서. 이것은 노인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 아닐까. 노년이 되었는데 직업도 없고 특별히 할 일도 없다면 누구든지 느끼는 감정이지 싶다. 그래서 피에르는 자신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본다. 과연 언제가 가장 즐거웠을까. 어디서 가장 즐거운 시절을 보냈을까. 그랬더니 그건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고 한다. 글쎄. 난 아직 그 나이가 아니라서 그럴까. 전혀 동감이 안 되니 말이다. 아마도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는 시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랬기에 다시 학교에 가지 전날 밤 그 옛날처럼 마음이 설레었던 것이겠지.

그렇게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면서부터 할아버지는 생기를 되찾는다. 이제 더 이상 쓸모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수업 시간 중에 옛날 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은 그렇다쳐도 몸까지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몸은 말을 안 듣고 날아오는 공도 잘 안 보이고 틈만 나면 잠에 빠져든다. 1학년짜리 아이들이 이가 하나씩 빠지듯이 할아버지 이도 하나씩 빠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새 이가 나온다는 희망이 있지만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몸은 나이를 속일 수 없겠지만 마음은 여느 1학년과 다를 바 없다. 같은 반에 여자아이가 전학을 오는데 그 아이를 사랑하기까지 하니까. 예순일곱 살의 어린 여자아이를... 그렇게 할아버지는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에 처음 1학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노년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매스컴에서 나오지만 막연하게 생각되었다. 당장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피에르 할아버지의 한 마디 '쓸모 없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건 나이와는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테니까. 정말 노년을 이렇게 알차고 생기 있게 생활할 무슨 방법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무기력하게 아무 희망없이 그저 하루를 '보내는 생활'이 아니라 정말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텐데. 그런데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이야기를 과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것도 주로 유아들이 읽는다는 그림책인데. 물론 어려서부터 노인을 이해할 기회로써의 역할을 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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